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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⑤] '황해여인숙'<1>

기사승인 2021.12.01  09: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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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말수:김만중문학상,부천민족상,복사골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해성고졸업

                         황해여인숙 <1>

머리맡을 더듬어 물그릇을 잡아당긴다. 끌려오던 그릇이 출렁 물을 흘리고 만다. 비닐 장판 바닥에 흥건하게 흩어진 물이 손끝으로 젖어 온다. 걸레 더듬던 손을 놓곤 목을 축인 해주댁은 물그릇을 윗목 제 자리에 밀쳐놓는다. 몸을 돌아 뉘어 손을 더듬어 본다. 잡혀 든 이녁 베개, 그대로 빈 채다. 그 밑으로 납작 달아 붙은 이불은 마치 이녁이 벗어둔 허물 같다. 베개도 이불도 늘 가만 제자리인 이녁의 잠자리. 봄이면 차렵이불로, 겨울이면 유난스레 추위 타는 이녁을 위해 솜이불로 철마다 갈아 뉘었다. 땀이 많은 이녁의 베갯잇은 자주 벗기고 온돌이 식지 않았나, 아랫목의 빈 이불 밑에 손을 넣어보곤 한다. 이제 이녁은 없다, 그런 맘으로 잠자리에 들어본 적은 없다. 자리끼 한 사발 머리맡에 두고 이내 코를 골기 시작하던 이녁의 잠버릇까지, 해주댁 세월 속에 온전하게 살아있다. 
아, 꿈이었다. 잠깐 팽개쳐두었던 그 꿈자리를 다시 끌어당긴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두벌잠 끝에 다녀왔던 꿈의 길을 되짚어 본다. 참 오랜만에 만난 이녁 꿈이었다.  또 뿌연 안개 속이었다. 뭐가 마땅찮아 그 희끄무레한 장막을 거느리고 오는가, 이녁은 한 번도 제 모습을 훨쩍 보여 줄 염도 없었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았어도 이녁 기척이란 건 단박에 알았다. 이녁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해주댁 등둑부터 찾겠는가. 그런데 참도 이상했다. 애달픈 대면도 없었건만 왜 이녁이 그렇게 선명한지. 서른을 눈앞에 둔, 허위단심 황해 바다를 노 젓던 건장한 허우대였다. 기다림에 지쳐 늙기만 했는데 이녁은 어느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청춘인가, 해주 댁은 괜히 발끈거렸다. 그런 그녀의 몸을 이녁이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무 말꼭지도 떼지 않았다. 왜 돌아오지 못했는가, 자초지종 사연도 밝히지 않았다. 해주댁을 안은채 한참을 가만 있기만 했다. 혹여 이녁 사라질까, 해주 댁은 침 삼키는 것도 염려스러웠다. 묵삭은 그리움, 그 마음 앞에서 쟁여
두 었던 앙탈은 볕을 품은 눈처럼 녹아버렸다. 그냥 눈에서 주르르 눈물만 흘러내렸을 뿐. 제 석죽기만 했을 뿐이다.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리고 비로소 엎질러진 물자리를 살펴본다. 바닥은 엔간찮게 젖어있었고 이불 끝자락은 꼽꼽하다. 걸레질을 한 후 등을 벽에 붙인다. 눈 너머에 걸려있는 액자, 누렇게 바랜 사진 속에는 잘 차려입은 이녁이 있다. 삽삽하면서도 과묵하고, 앞에 앉은 사람의 말에 귀를 잘 내주는 사람, 그런 이녁이 서른을 눈앞에 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섰다. 여자는 뭐 땜에 저렇게 주눅이 들었을까. 이녁 앞에선 언제나 그랬다. 잘못을 저지른 야단받이처럼 늘 서슴거리기만 했던 사진 속 여자. 식도 올리지 못했으니 사진으로나 격식을 차리자며 이녁이 먼저 청했다. 그때가 언제쯤이었던가, 해주 댁은 주먹셈으로 헤아려 본다. 여기 섬에 안착한지 칠팔 년을 넘겼나, 얼추 살림붙이도 알맞춤하게 자리를 찾았고 늘 북쪽에만 서성이던 이녁의 눈빛이 다문다문해지던 무렵이었다. 서너 달 만에 섬을 찾는 사진사 양반의 일정에 맞추었다. 오월을 지나던 때인가 보다, 구름옷 같은 치마저고리와 양복을 보면. 해주 땅이었으면 가당찮은 혼인이었을 게다. 부잣집 고명딸과 허드레 날일로 품을 파는 맨꽁무니 신분으로는 어림없는 수작이라 난리법석이었을 게다. 그런 일 또한 시대가 휘둘러대는 힘부림이기도 했다. 세상 돌아가는 대로, 함부로 맞칼을 잡지 않고 물 흐르듯, 그게 나약한 사람들이 살아내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기도 갸웃거리며 살펴본 후 창호지 맨 얼굴에다 사정없이 풀물을 흩뿌렸다. 그 일을 끝낸 후 깨끗이 씻어 말려 둔 유리 한 조각으로 창구멍을 만들고 그 아래엔 금방 따온 댓잎 몇 장으로 멋을 부렸다. 
다음 가을까지 바깥 기척의 궁금함은 그 창구멍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포르르 마당을 내려앉는 참새들의 날갯짓에도 이녁은 댓잎 쯤에 코를 걸치고는 바깥사정을 먼저 살피곤 했다. 저 작은 구멍에 뭐가 보일 거라고……. 해주 댁은 이녁 없는 틈을 타 창구멍에 눈을 갖다 붙였다. 정말이지 그 조막만한 유리 속에 온 세상이 다 잡혀 들지 않는가. 삐딱하게 열린 대문 사이로 건너 경수네 마루는 물론, 길바닥에 오줌 싸는 경수 녀석 고추까지 드러났다. 그것뿐인가, 구렁 논배미 너머 시퍼런 바다와 그 위로 갈매기 몇 마리를 거느린 하늘도 훤히 담겼다. 이녁의 작은 유리 속에 그렇도록 큰 세상이 숨어 있는 줄 몰랐다. 그렇게 하루를 바쳐 단장을 한 이녁의 문들, 그것들 위로 가을볕이 지나가면 창호지는 탱글탱글 살아나기 시작했다. 볕바라기를 끝낸 창호지는 두드리면 금방이라도 옥구슬 소리를 낼 것 같았다. 

이녁의 가을은 창호지 문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다른 계절로 건너가곤 했다. 그렇게 호강을 누리던 문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보살펴줄 이 없으니 문살은 낡삭고 말았다. 여든 줄에 들어선 해주 댁 몰골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문살도, 해주 댁도 세월만 하릴없이 받아먹어 이일렁거려도 바닥에 주저앉은 해주 댁은 몸을 일으킬 염도 안했다. 이웃들의 말질은 한결 같았다. 황해 땅으로 다시 돌아간 게 틀림이 없다고…….예수남은 나이에 뭔 고향이냐며 말전주꾼들이 만들어내는 이녁의 이유를 견뎌내는 게 더 힘이 들었던 해주 댁이었다. 차라리 풍랑에 휘말리는 사고였다면 아프고 슬프고 그 마음만으로 버티어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이녁의 배가 잠적할 무렵의 바다는 너무 얌전해서 핑계모조차 어설펐다. 이녁은 늘 황해 땅을 품고 살았고, 뜨내기 차림으로 속궁글은 삶을 살았다는 그 생각에 맞다들면 해주 댁은 앵한 맘을 가눌 수가 없었다. . 
‘내가 헛다리품으로 30여 년을 살았단 말인가.’
세상 모두가 이녁이 맘먹고 떠났다며 앞짧은 소리를 해대도 해주 댁은 이녁의 속탈을 믿고 싶었다. 그래, 방향을 잃었을 것이다. 이녁의 배는 남의 나라에 표류해 이 섬으로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일 게다. 해주 댁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이녁과 이룬 이 집에 방 몇 개를 들이고 여인숙이란 간판을 걸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60여 년 넘는 세월만 달아났다. 이녁은 제 성큼한 다리만큼 길쯤한 널빤지를 구해 와 섬질을 하고는 애깎이로 섭새기기 시작했다. 이녁 앉은 자리에다 널린 대
팻밥, 끌밥 가득 널어놓더니 달망진 널빤지 속에는 점점 글자들이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이녁 하다. 그랬어도 해주 댁은 이녁과의 살림바라지에서 차츰 살속을 알아나갔다. 그렇게 사진을 걸어 부부임을 섬에 고하고 이녁은 마을 사람들과 섞사귀며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점점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북쪽 대처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난밖 사람에게 처음엔 선뜻 맘을 내놓지 않던 섬사람들이었다. 행색에서 드러나는 신분을 보더라도 이녁과 해주 댁은 남의 입살에 오르내리고도 남을 만했다. 그러나 이녁은 보태지도 덜어내지도 않고 사실대로 자신을 말했다.정면 돌파였다. 그 진실은 동정을 받기도, 위로를 받기도 했다. 마음 붙이고 살면 그곳이 고향이라는 말로 섬사람들은 두 사 람의 이웃이 되어갔다. 물론 이녁도 무던히 노력했다. 변변한 벗바리 하나 없는 타지에서 오직 그들과 같은 섬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썼다. 새벽걸음으로 이웃 일판에 끼어드는가 하면 까닭 없는 일에도 엎쳐뵈곤 했다. 제법의 세월 문문한 이웃 만드는 데에 소용되었거늘. 그런데 자신이 애써 일군 이녁의 세상을 두고 왜 돌아오지 않는지. 사흘이 지나고 사흘 몇 개가 또 살걸음으로 달아났다. 몇 달을 넘겼지만 이녁의 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질 무렵이면 해주댁은 모랫바닥에 앉아 허허바다를 살폈다. 모두들 제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녁 발동선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별이 돋아나고, 달물결이 이 교통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이 먼 섬에 찾아올 누가 있긴 하는가, 가끔은 묵을 데가 급한 뱃사람들 등 펼 자리라도 마련해주면 오죽 좋아. 이녁은 간판 앞에서 변명하듯 말했다. 흘러들어 오는 객중에 행여 황해 사람 하나쯤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안부라도 물고 오지 않을까, 하는 셈속도 미리 해두었는지 몰랐다.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노동처럼 힘들다. 아흔을 코앞에 두었건만 이녁을 기다리는 마음만 늙지도 않고 아직껏 예순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물그릇을 챙겨 들고 방문 밖을 나서니 아침은 이미 댓돌 위 고무신 속에도 거늑하다. 하얀 고무신, 먼지 앉으면 닦고 그렇게 닦기만 했던 이녁의 신발이다. 해주 댁은 오늘도 그 신발 안에 발부터 넣어본다. 온기도 없는 신발은 해주댁 작은 발을 헐렁하게 맞아들인다. 석시삭은 댓돌 위에다 이녁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 문설주를 잡는다. 몸을 겨우 세운 후 부엌으로 들어간다. 침침한 눈가에 잡힌 개수대 안에 그릇을 놓고 새시 대문을 밀어낸다. 
“일찍도 일어 나셨네요.”
경운기 시동을 걸던 경수 아비가 모터에 머리를 수그린 채 말만 던져 보낸다. 건너편 경수 아비는 이녁이 떠난 후부터 해주 댁을 보살펴 왔다. 아침저녁 기침 소리로 안부를 확인하고는 문단속이며 군불 지피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엉덩이에서는 나무 판이 토해낸 톱밥들이 주렁져 있었다. 널빤지 속에 나타난 글은 ‘황해여인숙’이었다. 
“어때?”
멋 부리고 잘 다듬어진 글발은 아니지만 어느 글품쟁이의 것에다 비길 수가 없었다. 
“맘에 들어, 황해라는 말?”
“옹진이라 새긴들 누가 뭐라 하나?”
“황해 땅에는 당신과 내가 다 함께 있잖아.”
그래 황해 땅이었다. 꿈에도 잊지 못할 땅, 이 섬에 쉬이 맘을 준 이유도 고향 황해도 때문이었다. 어쩌면 황해를 쏙 빼닮았는지, 섬은 도도하게 높지 않아 타지 사람을 안심시켰다. 송마산을 닮은 야산 사이로 펼쳐진 구릉이며 온 골을 누렇게 물들이던 벼이삭을 섬 곳곳에 고향처럼 세워두고 있었다. 그래서 맘 놓고 주저앉은 섬이었다. 이렇게 이녁의 속멋은 남달랐다. 황해라는 글 속에 이녁과 해주댁이 함께 있다는 것을, 본디 그 땅이 두 사람의 본바탕을 틀고 앉았다는 것을 그 간판 글로 대신 말해 주려 했으니. 그 간판을 대문 기둥에 걸던 날 이녁은 아랫집 정서방이며 이북 땅에서 피난온 이웃 몇을 불러 거나한 술판을 벌였다. 불콰한 얼굴로 대문 밖을 나가 간판을 애만지던 이녁, 비록 글속은 넉넉하지 않지만 간판 글은 어느 명필의 솜씨와 견줄 봐 없이 훌륭했다. 이녁의 그런 모습이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교통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이 먼 섬에 찾아올 누가 있긴 하는가, 가끔은 묵을 데가 급한 뱃사람들 등 펼 자리라도 마련해주면 오죽 좋아.  <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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