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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 윤정희]'동업중생(同業衆生)'

기사승인 2018.02.14  22: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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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희:수필과비평 시인상 등단/계룡수필회원

                        동업중생(同業衆生)

                                                                윤정희
 

먼 옛날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산기슭. 조그마한 사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큰스님의 지도 아래 성호(가명)스님과 호성(가명)스님은 열심히 깨달음의 길을 향하고 있었다. 두 도반이 큰스님께는 어떻게 비쳤는지, 아니면 두 제자를 시험했는지, 성호만 불러 소지하고 있던 경책, 목탁, 염주를 선물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도반호성은 그 사실에 섭섭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마음 수행을 했어도 불같이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 또 귀한 보물을 갖고 싶은 욕망을 금하지 못했다.
 호성은 분한 마음을 숨긴 체 성호의 손을 끌고. *포행(布行)을 하자며 평소에 한 번씩 갔던 경사가 심한 산으로 올라갔다. 목적지에 간 성호는 바위에 올라가 평상시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참선에 열중했다. 그리고 수년을 같이한 호성에게서 깊은 벼랑으로 떠밀리고 말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성호는 잠 한숨 자고 난 것처럼 깨어났다. 순간 주위를 돌아보았다. 호성은 간데없고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은 천 길 낭떠러지 밑 큰 구렁이의 등이었다. 정신이 들자 구렁이가 말했다. 자기는 생전에 큰 사찰의 주지스님이었는데 지나친 탐욕으로 죽어 구렁이로 태어났단다. 또 어디선가 와글와글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구렁이의 두꺼운 비늘 밑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생전에 자기의 욕심을 채워 준 신도들이 해충이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마지막에 자신과 신도들의 천도(遷度)를 부탁하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살아난 스님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한 시대를 같이한 동업중생(同業衆生)들의 끝자락을 보았다. 불가에서 흘러내려오는 설화다.

그렇지만 때로는 내 불심에 정지선을 그려주는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스무 일곱 해를 다니던 사찰에 발길을 돌렸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들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드나들던 법당이다. 나의 종교 생활 흔적이 도량에 오롯이 남아 있다. 영원히 머무르고 싶었던 곳. 올곧은 불안으로 이끌어준 내 생애 잊지 못할 곳이기도 하다. 언제인가부터 법당에 앉으면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마음이 어수선 했다. 불교에서 삼독(탐,진,치)를 적나라하게 보고 느꼈다. 믿고 따
랐던 모든 행동들이 어느 순간 동업 중생임을 깨달았을 때 미혹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도량 어느 부분도 내 자리가 아님을 절감했다. 과감하게 발길을 돌렸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뀔 만큼 이어온 인연들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길이 아닐 땐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결심이 절실해졌다. 헛헛한 빈 가슴만 요동치듯 아팠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내 어리석음이 미웠다. 어느 스님의 이야기에 불가에서는 겉중과 속중이 있다고 한다. 전자는 지나치게 명예를 탐착하고 부에 집착하여 스님의 본질을 잊어버린 이요, 후자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수행자를 의미한다고 했다. 평생 한 길을 가면서 수행 정진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수도자의 수행길이 만만찮음은 보고 들어서 너무나 잘 안다. 자신을 따르는 신도에게는 믿음을 줘야하고 탐욕과 욕망에 찌든 중생(衆生)에게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는 일이 종교 지도자의 의무라 믿는다.

몇 해가 흘렀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자부한다. 종교 지도자뿐만 아니라 제가 종교인들도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하고 잠시만 눈을 감고 있어도 자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치 가을의 나목처럼 떨구고 비우는 연습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올바른 종교인의 자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 혼탁한 세상에 신도들의 피땀 어린 시주 물을 당연한 듯 낭비하지 않고 수행과 덕행을 갖춘 선지식. 멀리 있어 손닿을 수 없으니 그리울 뿐이다.
*포행(布行):승려들이 참선을 하다가 잠시 방선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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