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진:64년욕지출생/현대시조등단/욕지중 교장/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원/제1회금요시조문학상수상
「금요거제시조選 - 241」
은연중(隱然中)
강 민 진
늘 좋은 생각하여
미소가 그윽하고
자상한 주름 잡혀
빛나는 고운 얼굴
은연중 행복 에너지
되로 주고 말로 받네.
마음이 거슬리면
화를 품어 몸도 아파
찌푸린 표정에다
골 깊은 험한 얼굴
은연중 던진 말마다
상처 되어 돌아오네.
세상의 사람마다
타고난 결이 달라
상대를 헤아리고
자신을 다스리면
은연중 비운 마음에
고요함이 스민다.
◎작은 감동
진종일 비가 내린다. 가을비치고는 강수량이 엄청나 이대로 계속 내리면 물난리가 염려될 정도다. 차오른 물 위로 은목서의 낙화가 마치 눈이 내린 양 하얗게 떠 있다. 작년에 전정을 많이 했더니 예년보다 훨씬 많은 꽃을 피웠다. 진동하는 향기에 다들 좋아했는데 낙화가 아쉽기만 했다. 비 때문에 모처럼 일손을 놓고 근간에 있은 몇 가지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첫째는 재미교포 장기만 씨와의 만남이었다.
달포 전에 중년의 남자분이 30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다는 재미교포 내외분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인근 학동 고갯마루에 있는 파노라마 케이블카를 타려 했는데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하게 이곳을 왔다고 했다. 그런데 교포 남자분이 유튜브에서 이곳을 보았다며 반색을 했다. 행운이란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마침 다른 방문객이 없던 터라 시간 여를 그들과 함께했다. 나보다 연배로 보이는 교포분은 작품감상에 시종 진지했고 묻는 말들에 연륜이 배어 있었다. 특히 예술마당에 배너로 걸린 시조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 가곡이나 오래된 동요에 해박했다. 그리곤 내가 하는 설명에 귀 기울이고 연신 메모를 했다.
떠나면서 고국에서의 가장 유익한 시간이 이곳 방문이었다며 급히 사무실에 들리어 부인 몰래 아내에게 ‘선생님의 명 강의료’라며 지갑에서 100불을 꺼내 건네려 했다. 아내는당황하며손사래를쳤으나부인이듣겠다며한사코손에집혀주었다.<Kee Man’s Korean Lyric Song Concert Pat 1>이 적힌 메모지와 함께였다. 그가 떠난 후 Lyric 유튜브를 검색해 보면서 그의 열정과 조국 사랑에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그는 1980년에 도미했고, 초랄유니온합창단 단원이며 솔로 보컬리스트로 한국 민속음악 가수로 한국 전통가곡 독주회를 수차례 갖은바 있는 장기만 씨였다. 유튜브로 본 그의 가창력은 대단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장기만씨를 두고 이 글귀를 떠올렸다. 그가 주고간 100불을 따로 보관하고 있다.
둘째는 경남 행정동우회 여성회원과의 만남이었다.
이달 초순에 경남도청에서 퇴직한 공무원들로 구성된 단체인 경남 행정동우회의 방문이 있었다. 관람 후 이런 명소를 재직시 홍보 등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인근 관광지와의 패키지여행을 권유하는 이도 있었다. 인솔자가 버스 탑승을 알리자 다들 발길이 바빠졌는데 일행 중 두 분이 필자의 시조집을 찾았다. 절판이라 여분이 없다고 하였더니 그중 여성분이 못내 아쉬워했다. 미안한 마음에 거제시조문학회의 다섯 번째 사화집인 <간간이 부는 바람>을 드렸다. 그때 마침 여남 명의 다른 일행들이 왔기에 그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여성분이 급히 내게로 와서 예술마당에 걸린 시조 배너를 전부 촬영하였다며 이대로 그냥 갈 수 없다면서 책값이라고 두 번 접은 5만원권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당황한 나머지 그녀의 얼굴을 보았더니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리곤 감동의 시간을 갖게 해주어 고맙다며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음이 여린 나는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나중 분들의 안내를 마치고 주머니를 확인해 보다 눈을 의심했다. 한 장 인줄로 안 5만원권 넉 장이나 접혀 있었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가까스로 그녀가 창원시 학교운영위원회 여성운영위원장협의회 서경희 회장임을 알았다.
셋째는 윤평원 씨와의 만남이었다.
지난 17일 부산 사직교회에서 단체관람을 왔었다. 차량에 쓰인 글귀에 사직교회가 적혀있어 사직교회 교인들인줄 알았다. 일전 답사를 했는데 생각보다는 인원수가 많았다. 안내를 하면서 이런 신소리를 했다. “저는 휴일마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교외를 다녔습니다. 난과 돌을 찾기 위해서였답니다. 그 결과 이곳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교외란 말에 웃기는 하였으나 이내 교회를 다닐 것을 몇 사람으로부터 권유를 받았다. 그러겠노라 했으나 손님 접대로 한 말이었다. 이윽고 교인들이 퇴장하고 있었는데 그중 중후한 인상의 한 분이 자기도 시조를 쓴다면서 인사를 건넸다. 이곳 거제가 고향인데 예술마당에 걸린 시조 작품을 잘 감상했다며 시조집을 찾았다. 여분이 없다며 사무실 서가에서 급히 <무원 김기호 시조집>과 <현대시조> 1권을 뽑아 드렸다. 순간 그분의 표정이 흔히들 말하는 ‘뛸 듯이 기뻐한다’는 말 그대로였다. 고향이 거제라기에 존함을 여쭈었더니 ‘윤평원’이라 했다. 속으로 고향이 거제이면 칠원 윤씨 일태고, 선배 문인 ‘반평원’형과 이름이 같기에 쉽게 기억되리라 여겼다. 이튿날 내가 건넨 명암에 적힌 이메일로 윤평원씨가 보낸 내용은 이러했다.
30 년 쯤 지났나 싶습니다. 장가계를 구경한 지가.
아직도 기괴한 돌산이 뇌리에 남아 있는데 내고향
거제에서 미니 장가계를 만나다니....
게다가 이성보 관장님을 뵙게 된 것만도 영광인데
저의 은사님 무원 김기호 시조집에 현대시조 151호도
선물로 받다니!
어제(2024.10.17.일)는 정말 잊을 수 없는 한 날입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진기한 조각, 시화, 큰 감동이었습니다. 저의 졸작 한편 보냅니다.
잘살아 보고지고
산돌 윤평원
지하의 갱도 막장 중동의 열사에서
땀 범벅 먼지 범벅 휴식도 잊었었소
바라는 한 가지 소원 잘살아 보고지고.
‘어르신 세대’ 연시조 9수 중 한 수입니다. 헛 살지는 않았나 싶어 아내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시조시인 계간 현대시조 발행인 |
‘은연중’은 남이 모르는 가운데란 뜻이다. 시조 작품 <은연중>은 시인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보는 뜻에서 3수 연작으로 읊은 강민진 시인의 교육철학이 담긴 작품이라 하겠다. ‘은연(隱然)’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 은밀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표현은 어떤 감정이나 생각, 행동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은근하게 나타나거나 표현되는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은연한 표현은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거나 상황을 조심스럽게 다룰때 유용하다.
좋은 생각을 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듯이 / 늘 좋은 생각하여 미소가 그윽하고 / 그기다 / 자상한 주름 잡혀 빛나는 고운 얼굴 /을 지닌다면 / 은연중 행복에너지 /가 넘쳐나 그 결과는 되로 주고 말로 받게 된다. 따라서 은연한 감정이나 생각은 세심한 관찰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사람의 마음이 거슬리어 상하면 체질이 산성화된다. 그리하여 화를 품어 몸이 아파 온다. 그러니 찌푸린 표정하며 골 깊은 험한 얼굴까지 되기 마련이다. 은연중에 던진 말마다 상처 되어 돌아오게 된다. 한마디 말의 중요성,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사람은 각자 지닌 고유한 향취가 있듯이 / 세상의 사람마다 타고난 결이 다르다 / 따라서 상대를 헤아리고 / 배려하며 자신을 다스리면, 드러나지 않게 슬며시 비운 마음에 고요함이 스민다. 3수 연작의 시조 작품에서 각 수마다 종장의 시작이 ‘은연중’임에 눈길이 간다. 시인의 창작 수준이 만만치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강민진 시인은 지난 9월 1일자로 욕지중학교로 근무처를 옮겼다. 그것도 자원한 줄 알고 있다. 전 근무처인 거제제일고등학교는 학생수가 800여명이었는데 욕지중학교 학생수는 8명이라고 한다. 2년 6개월 남은 임기를 모교인 욕지중학교 교장으로 마무리 한단다. 오늘날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말이 강민진 교장 앞에선 빈말이 되고 만다.
오늘따라 가을 하늘이 너무 맑아 보인다. ‘은연중 비운 마음에 고요함이 스민다’고 하였는데 그 비운 마음이 내 마음이면 얼마나 좋으랴! -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