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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206」이덕재 '고향'

기사승인 2024.02.24  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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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재/거제동부출생/동부초운영위원장/동부구천마을이장/2017현대시조등단/한국문협회원/거제시조문학회 회장/능곡시조교실수강/시조집'개똥벌레’

   「금요거제시조選-206」
     
     고 향

 


 


 




       이 덕 재   
   텅텅 빈 집터마다
   꼬물대는 옛 기억들

   윗채와 아래채에
   외양간이 있던 곳곳

   웃음꽃 담 넘어가듯 피어날 것 같은데.


   자치기에 딱지치기
   술래 잡던 타작마당

   빼곡한 잡초들의
   풋풋한 모습에서

   해 맑던 아이들 얼굴 떠올려도 보지만.

◎무모(無謀)와 혜안(慧眼)
 ‘돈키호테’, 나의 무모함에 지친 아내가 자주 들먹이는 말이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M. de Cervantes, 1547~1616)의 작품이다. 아주 열악하고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24세에 레판토해전에 참전했다가 가슴과 손에 상처를 입은 상이군인이 되고 말았다. 28세 때에는 해적의 공격을 받고 납치되어 알제리에서 5년간 노예 생활도 겪었다. 4번이나 거듭된 탈출도 실패해서 보석금을 내고 겨우 풀려났다.
 처녀작 ‘라 갈라테아’ 등 여러 편의 희곡을 섰지만 팔리지 않아 문학의 길을 접었다고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1605년 감옥에서 ‘돈키호테 제1부’를 출판했다. 그의 나이 58세 때였다. 그의 인생은 불운과 실패,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 있어 제대로 받지 못한 교육, 불우한 가정환경, 신체적인 결함이 장애가 될 수 없었다.

 누군가는 현재의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보는 긍정적인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시신경을 통해 사물을 식별하나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 어렵다. 시각 기능이 마비되어 사물을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을 일러 맹인이라 부른다. 문맹인이니, 컴맹, 지맹(智盲), 덕맹(德盲) 등 여러 종류의 맹인이 있고 보면, 세상에는 맹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지 싶다. 제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육안으로 감지되는 인식만으로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파악했다고 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만을 고집하여 절대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인간의 한계성,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차라리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하던가. 눈을 뜨면 600m 앞은 볼 수 없지만, 눈을 감으면 마음의 문이 열려 무량 세계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혜안(慧眼)은 차별이나 망집(妄執)의 생각을 버리고 진리를 통찰하는 안목과 식견을 일컫는 말이다. 혜안을 가진 자에게만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따른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은 서포 김만중의 사위로 그의 저서 ‘소제만록(疏齊漫錄)’에 황형(黃衡, 1459~1520)의 이야기가 나온다. 장무공(莊武公) 황형이라는 사람이 강화도 연미정에 농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그곳에 물러나 살면서 날마다 콩 두 되를 볶아 마을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먹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린 소나무를 바닷가에 옮겨 심게 하였는데, 그 소나무밭이 수십 리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공께서는 이미 몸이 늙으셨는데 무엇 때문에 나무를 많이 심으십니까?”라고 묻자, “나라가 장차 70년 뒤에 가면 반드시 여기서 힘을 얻을 것이요”라고 대답하였다. 임진년 전란이 일어나 창의사 김천일과 전라 병사 최원이 강화를 지키게 되자 그들은 과연 그 소나무로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재목으로 풍족하게 쓸 수 있었다.

 정유년에 다시 재란이 일어 중국 장수 양호가 선조를 강화로 모실 때에도 관원들은 그 소나무를 베어서 행궁과 창고 및 집들을 지을 수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황형의 선견지명에 탄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직면한 현실을 바로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앞날을 예견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으로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은 가히 초능력에 속하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낮달이 챙을 달면 개미가 줄을 선다
   만약 사람이 미물의 예지를 배운다면
   적어도 물난리만은 예측할 수 있을게다.

   광대의 칼춤에 따라 줄 이은 혼돈의 손길
   성한 산하를 짓이겨 높게 쌓은 허망의 늪에
   위기의 수달 가족이 생존법을 익힌다.

   깊이 새겨진 문신 개칠할 수 없는 오판
   온 겨레 힘을 모은 한바탕 가면무도회
   더러는 신의 존재를 믿어보다 말다가….
        -拙詩, ‘착란-평화의 댐’, 전문

생각을 앞세우는 사람은 현명 하지만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뉘 알리오. 행동이 앞서 ‘돈키호테’식으로 시작한 이곳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될런지.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인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고향>은 고향을 지키고 사는 농사꾼 시인이 마을 곳곳의 빈집을 둘러보면서 왁자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암울한 심사를 2수 연작으로 읊은 이덕재 시인의 작품이다.

 오늘의 산업화 사회가 불러온 농촌의 피폐화, 공동화 현상을 우리 모두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어쩔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서글프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시인만의 시각이 아니기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아련히 떠오르는 옛 추억, 그것은 누구나 다 가슴 한구석에 아름답게 남아 있는 유년 시절이 아닐까. 시인은 유년 시절을 회상함으로서 오늘의 삶을 짚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년 시절이 아름답고 그립다고 해도 다시는 오지 못할 지난 날들이기에 더욱 간절한 것이다.

 향리의 이장인 시인은 마을 곳곳을 돌아보는 일이 많다. 수시로 마주하는 / 텅텅 빈 집터 / 다. 그곳에서 / 꼬물대는 옛 기억들 / 로 해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 집터엔 / 윗채와 아래채에 외양간이 있던 곳곳 / 이 보였다. 한참을 서있자니 / 웃음꽃 담 넘어가듯 피어날 것 같은 / 환상에 젖었다.

 동네 아이들과 해지는 줄도 모르고 / 자치기에 딱지치기 술래 잡던 타작마당 / 이었건만 지금은 / 빼곡한 잡초들의 풋풋한 모습에서 / 개구쟁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 해맑던 아이들 얼굴 떠올려도 보지만 / 어쩌랴.

 소도 가고 사람도 가고 많이도 떠난 고향마을, 떠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려면 개발의 붐이라도 일어야 하련만 그게 아닌 모양이다. 청정지역에 생수공장이 들어선다고 온통 아우성 이다. 시인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모교인 동부 초등학교엔 올해 신입생이 몇이나 될런지, 하나 같이 암울하기만 하다. <고향>을 접하고 회상에 잠긴 독자도 많으리라. 겨울비가 장마처럼 내리는 날에 고향집을 그린다.<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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