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윤주)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 회원/거농문화예술원 실장/동아대 서양화 전공/2021년 현대시조 등단/제39회 대한민국미술대전전통미술공예 특선/제46회 부산미술대전문인화 특선
「금요거제시조選-184」
숲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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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반(윤윤주)
오늘도
숲속으로
요리하러 갑니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웃음소리
신선한
재료로 무친
몸이 먹는
건강식.
시인상세프로필 ▲윤윤주 -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 회원/거농문화예술원 실장/동아대 서양화 전공/ -2021년 현대시조 등단/제39회 대한민국미술대전전통미술공예 특선./-제46회 부산미술대전문인화 특선./제43회 경상남도미술대전문인화 입선./제21회 대한민국여성미술구상대전 문인화 특선./제47회 부산미술대전 특선./한국미협회원/능곡시조교실 수강 |
◎맞돈
더위에 어영부영하는 사이 추분이 지나고 추석이 목전이다. 성급한 나무는 잎사귀를 떨구고 있다. 본격 조락은 달포나 남았는데 떨어지는 잎사귀는 6호 태풍 카눈이 설 건드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 했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걸 보고도 천하에 가을이 옴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이는 당나라 시절 무명씨들의 시를 모아 놓은 책(文錄) 속에 ‘山僧不解數甲子(산승불해수갑자) 一葉落知天下秋(일엽낙지천하추) - 산속 스님은 세월을 헤아리지 않고도 낙엽 하나로 천하의 가을이 왔음을 안다’.에서 비롯된 성어다. 일엽지추는 예민한 감지력을 항상 간직하는 것이 좋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부분만 가지고 일을 처리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도 주고 있다. 추석 대목 밑이기 때문인지 외상값 독촉에 죽을 맛이다. 내가 시달리고 있는 외상값은 미니 장가계 제작에 사용한 식물 구입 대금이다. 식물은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고 불문율이다. 나라는 사람을 믿고 외상으로 준 식물이언만 미니 장가계를 주문한 상대방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 해서 사람 꼴이 말이 아니게 된 셈이었다. 맞돈을 치룰 형편이었다면, 속된 말로 현금 박치기였으면 좀 싸게도 구입할 수 있었으련만 가난한 서생이고 보니 쓴 입맛만 다실 뿐이다.
맞돈을 두고는 해학(諧謔)을 즐긴 유랑객 하원(夏園) 정지윤(鄭芝潤)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정지윤보다 수동(壽銅)이란 그의 字로 더 많이 불렀다. 정수동은 순조 1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철종 때(무오년) 51세로 세상을 하직한 방랑 시인으로 신분은 中人이었으나 지혜롭고 詩와 학문에 능통하여 명문 귀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아 명성이 京鄕에 떨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人品 또한 맑고 솔직 담백하여 외롭게 살았으며 술을 남달리 즐겨 李太白의 후예란 평을 받을 정도였다.
鄭壽銅이 하루는 술 생각이 나서 평소 단골로 드나들던 술장수 노파를 찾아갔다. 「보소, 새 술 거를 때쯤 됐을 텐데 맛 좀 보게 물 주지 말고 한 잔 짜오게. 오늘도 외상일세.」 하였것다. 외상이란 말에 화가 치민 노파가 눈살을 찌푸리며 하는 말이 「생원도 딱하시구만. 외상 한 번 갚아보고 또 외상이라면 내 말도 안 하겠소. 날 더러는 죽으란 말이오?」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평소엔 상냥하던 노파이언만 지난밤엔 무슨 일이 있은 모양이었다. 무안을 당한 수동은 마루 끝에 우두커니 앉아 술 생각에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어디서 왔는지 돼지 대여섯 마리가 몰려와서 멍석에 말리던 술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수동은 「오냐, 잘 먹어라」하고 내심 시원히 여기고 있었다. 한참 후 나와 본 노파는 꼴이 아닌데 정수동은 보고만 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여보시오. 그래 가지도 않고 앉아 있으면서 돼지가 술밥을 먹는 것을 빤히 보고도 쫓아 줄 생각은 안 하고 구경만 했단 말이오.」하고 큰소리로 나무라자 「그야 외상 먹으려다 무안당한 나로서는 저놈들은 맞돈 내고 먹는 줄 알았지, 감히 외상을 저렇게 활발히 먹는 줄 알았겠나. 그저 돼지 팔자가 부러워 구경만 하고 있었네.」하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정수동은 또 술을 남달리 좋아해서 술맛을 가리거나 시비하지도 않았다. 어느 무덥던 여름날 초라한 주막 앞을 지나가다가 주모를 불러 한 잔 술을 청했는데 술이 어찌나 신지 코를 잡고야 들이킬 정도로 식초가 된 듯했다. 마시고 나서 술값을 던져 주고 나섰는데 주모가 부르며 따라온다. 이번에는 수동이 외상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두 잔 값을 내고 간 것이다.
「한 냥 찾아 가유우-길소온! 한 냥 더 냈어유우!」
「왜 그러나?」
「한 사발에 한 냥이어유」
「그래 한 냥은 술값이고 한 냥은 식초값 아닌가?」
나귀 등에 앉은 수동은 손을 젓고 멀어져 갔다. 젓는 손은 신 술을 팔지 말라는 주문이요 당부지 싶다. 지난날 술깨나 마신 나였건만 외상술값 한 푼 없고 보니 세상을 헛 살은 것은 아닌가하고 되뇌어 본다. 정수동 같은 친구와 외상술로 대작 한번 하고 싶은 술꾼도 많지 싶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치지 못한다기 이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 어디 있던가.
‘광기가 없는 대시인은 없었다’고 한 데모크리스토스나 ‘광기가 섞이지 않은 위대한 혼은 없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보더라도 위대한 것이란 광기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지니, 세익스피어도 ’광기와 위대한 혼과의 사이에는 한 겹의 얇은 벽(壁)뿐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광기라는 것이 위대한 창조를 낳는 원천임을 알 수 있을 듯하네. 장가계 거제 장가계에 미친 이는 나였다.
拙詩 ‘不狂不及’, 전문
돌이켜보면 내가 거제 장가계 제작에 미치지 않았다면 식물 외상값으로 곤욕을 치를 일도 없었으리라.맞돈을 치루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한데 내 처지를 알기라도 하는 듯 매미도 오늘따라 구슬피 운다.하지만 어쩌랴 자업자득인 것을,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야 원망이라도 하련만, 믿는 건 궁즉통(窮則通)이다. 암 그렇고말고.(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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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곡 이성보 현대시조 발행인 |
시조 작품 〈숲의 요리〉는 숲에 드는 것을 두고 건강 요리하러 간다고 읊은 윤윤주 시인의 단수 작품이다.〈說苑〉은 전한(前漢) 말 유향(劉向)이 편찬한 책으로 고대로부터 한(漢)나라 때까지의 온갖 지혜와 故事와 格言이 총 망라된 교훈적인 說話集이다. 제3권 건본편(建本篇)에서는 시작을 신중히 하여 근본이 확립되면 道가 생긴다는 것을 주제로 여러 사례를 통해 근본을 수립함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제25장에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가 나온다. 관자창름실지예절(管子倉廩實知禮節) 의식족지영욕(衣食足知榮辱), 관자에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광과 치욕을 안다고 하였다.’ 그렇다. 예전엔 창고가 가득 차고 먹고 살만 하면 예절을 알고 영광과 치욕을 챙겼다. 바꾸어 말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끼니 걱정이면 예절은 뒷전이란 것이 된다. 먹고 살만 해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예절보다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건강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건강, 그래선지 근간엔 맨발 걷기 산책로와 모래사장엔 새벽부터 사람들이 붐비고 파크골프장엔 회원들이 줄을 잇는다.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이렇게 적었다. 매일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봅니다. 일상에 의식주로 채워지지 않는 체력과 마음의 건강을 구하려는 사람을 보며 지어 봤습니다.시인은 어제처럼 / 오늘도 숲속으로 요리하러 갑니다 / 가서 /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웃음소리 /는 하나 같이 귓전에 맴도는 신선하고 행복한 소리들이다. 그 소리 들은 이를테면 / 신선한 재료로 무친 몸이 먹는 건강식/ 이다.
‘신선한 재료로 무친 몸이 먹는 건강식’이란 표현이 참신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일상에 찌든 현대인의 건강식은 숲이 주는 요리 즉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웃음소리다. 때 절은 심신이 그 소쇄함에 세척되리라.‘숲의 요리’, 듣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인다.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