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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수단편소설집①] '너는 아는가, 내 이유를'<3>

기사승인 2021.07.27  00: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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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말수: 김만중 문학상,부천 민족상, 복사골 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 해성고졸업

형우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곳이었다. 어디선가 새 울음이 들려왔다. 무슨 새일까, 알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여자는 새 소리에 골몰했다. 형우도 이 새 소리를 들었을까. 학교 운동장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어둔 세상을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형우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티브이 화면 속에 나타난 소년의 얼굴만 그려졌다. 고개를 저어 그 화면을 흩뜨려 보았다. 그러나 잔잔해진 화면 속에 다시 나타 난 건 코 위의 얼굴 부분이 생략된 소년의 얼굴, 그 이상의 것은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소년의 덧니는 가지런한 오른쪽 치아 속에 박혀 있었다. 비좁은 자리를 양보하고 바깥으로 피해 앉은 덧니는 형우의 것과 똑같은 위치였다. 
“노래를 좋아하는 모양이죠?”
“네 많이 좋아합니다. 노래는 제 삶의 버팀목입니다”
“부모님께 인사 한 번 하시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생초에 할머니가 계십니다. 쑥스럽지만……. 할머니 사랑합니다.” 코 위로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이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모양이죠?”
“네. 교직에 계셨었는데…….”
좀 끈질기다, 싶은 인터뷰가 끝났다. 그리고 소년은 소년원을 방문한 어느 합창단의 공연에 답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When I dream'
소년의 노래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덧니로 지어내는 노래 속에 그리움이 애절하게 묻혀 나왔다. 비록 젊은 한때의 과오를 속죄하는 소년원에서의 생활이지만 절망의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소년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여자는 내내 그의 입만 쳐다보았다. 고등학교 유니폼을 입은 소년의 얼굴은 코 밑의 일부만 화면이 잡아내고 있었다. 턱 선을 그려 올라가면 갸름하게 완성될 얼굴에 큰 눈이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검은 눈썹, 웃으면 길게 일자를 그릴 것 같은 잠잠한 눈만 상상 속에 자리 잡았다.그 소년에게서 형우의 냄새가 났다. 아니 형우의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 열일곱의 형우를 소년의 얼굴에 셀로판지처럼 갖다 댄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질 듯했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소년과 형우의 이미지가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생초라면 산청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일 것이었다. 형우도 그 이름을 가진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형우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친지의 예식장에서 여자는 뜻밖에 형우의 누나를 만났다. 그날 그녀가 다짜고짜 여자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을 때에야 형우를 떠올렸다. 당황스런 울음의 이유가 형우의 죽음이었고, 그것도 아주 오래전이었다는 이야기에 여자는 잠시 멍해진 기분이었다. 이유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죽음은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했다. 서른 살을 살아내지 못한 형우, 그래서 서른 살의 형우를 상상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다만 열일곱의 형우만을 기억 속에 가두어 두었을 뿐이었다. 화면 속에 나타난 소년의 턱 선으로만 입력되어 버린 형우의 기억이었다. 오른쪽 치아에 손님처럼 앉은 덧니, 웃으면 덧니가 살짝 말을 거는 듯한 형우, 서툴게 자란 콧수염 또한, 기억 속 그의 나이를 살고 있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그의 말대로 지금쯤 출소하
여 잘 살겠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아득한 건 기억뿐 아니다. 여자의 유년을 풀어헤친 남녘의 자그마한 섬, 그 거리조차 이젠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이렇게 아득한 느낌으로 시작되는 건 아닐까, 고립이 시작되고 멀어진 그 끝이 죽음일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죽음의 정체
와 도대체 죽음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있기나 할까, 그런 것들이 잠깐씩 궁금하게 다녀가곤 했다.생전에 교우했던 사람들을 정말 죽음의 동네에서 만날 수 있을까. 여자와 알고 지내던 대부분의 이름들이 그 동네로 먼저 떠났다. 그들이 먼저 간 곳을 따라간다면 정말 그들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겔까. 담 너머 옥련 언니, 여자의 첫 생리를 두렵지 않게 감싸주던 그녀가 가슴 병을 앓다가 일찍 삶을 마감했고, 여섯 개의 손가락을 
지녔던 사촌도 일찍 떠나갔다. 지랄병을 앓던 광성이가 달집 태우는 불 속에 뛰어들어 열다섯을 넘기지 못한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늦게야 접한 형우의 죽음은 마치 좀 벌레처럼 여자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뜨겁지 않게, 질기지도 않게 여자의 시간에 눌러앉아 생각을 함부로 부리기 시작했다. 아주 힘든 시간이면 견딜 수 없는 여자의 삶에 무거운 이유가 되기도 했다. 형우의 죽음은 마치 지친 여자의 삶에 핑계처럼 들어와 박혀 함께 기거하기 시작했다. 햇살이 너무 찬란한 대낮이나, 비 오는 오후에도 가끔은 슬펐다. 형우의 열일곱 살적 덧니와 풋내 나는 턱수염만 떠올리면 여자는 그의 부재가 서러워지곤 했다. 어쩌면 여자는 서러운 제 인생에 형우의 죽음을 덧씌워 그럴듯한 퍼즐을 껴 맞추고 있는지도 몰랐다. 형우와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외쪽생각으로 지냈을 뿐이었다.

아주 이웃한 곳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길로 학교를 다녔고 오면가면 부딪히며 서로의 일상을 넘겨보곤 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책을 많이 읽고, 여자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던 형우, 그가 여자의 가방 속에 넣어둔 두루마리 종이를 발견한 건 늦은 하굣길이었다. 그림 속에 여자가 있었다. 교실마루를 닦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교복 치맛자락 사이로 팬티가 미어져 나온, 여자의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여자는 골이 났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형우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여자는 등교시간을 늦추기도, 서두르기도 했다. 골목길이나, 들길에서 그를 만나면 일부러 얼굴을 돌리곤 했다. 형우는 뭍으로 진학했고 여자는 가까운 읍내 학교로 통학했다. 다시 형우를 본 건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7월이었다. 뱃머리에서 곧장 달려온 듯, 형우가 여자의 집 창문에 또 한 장의 두루마리 그림을 던져 놓고 달아났다. 여자의 정면 얼굴이었다. 뒷면에는 ‘얼굴’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교복 색깔이 흰색이었던가, 아니면 하늘빛이었던가, 그 기억은 지금도 여자에게 혼란을 준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아니 덧니가 활짝 웃었다. 약간은 장난기가 매달린 입언저리였다. 후에 사범학교를 졸업했고 다소 엉뚱했지만 수학교사 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형우가 제 의지대로 선택했더라면 국어나, 음악,아니면 미술교사가 되어 있어야만 당연했을 것이었다. 시가 적힌 크리스마스카드로 알아낸 그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형우와의 인연은 그 크리스마스카드로 끝나고 말았다. 열일곱 앳된 얼굴은 여자의 시간 속에 갇힌 마지막 화면이었다. 사랑이라든가, 배신, 그런 황홀한 사연 같은 게 없었던 형우였지만 어린 날 마음속에 버릇 들여진, 그래서 갚지 못한 빚꼬리처럼 남아 있는 이름이었다. 그런 형우였다. 덧니로 말하는 소년을 화면에서 만났을 때에 여자는 자신의 가슴이 지니고 있는 묵삭은 비밀을 끄집어내었다. 잠시 잊고 방치해 두었던 형우, 지금도 여자의 가슴에 얹힌 체증이었다. 병원에서 제일 먼저 떠올린 얼굴도 형우였다. 형우의 세상에서 그를 만난다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형우는 어떤 계산으로 받아들여 줄까,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관찰해 보았다. 형우보다 더 많이 살아온 15여 년의 세월이 얼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눈썹 근처에 슬며시 자리 잡는 검버섯, 뒷걸음질 치는 눈두덩, 임플란트로 교체한 치아, 어디 하나 성한 데 없는 모습이었다. 형우가 알아보기나 할까, 라는 생각 끝에 여자는 또 씁쓸한 웃음이 매달렸다.

고단하다며 징징거리는 가방소리를 끌고 여관을 나온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온 길을 되돌려 버스를 탔고 진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 이 가방을 끌고 가얄 곳은 어디일까, 여자는 고개를 빼내어 터미널 벽에 걸린 행선지들을 읽어보았다. 많은 도시의 이름
들이 벽 높이에 걸려 있었다. 유년을 함께 했던 섬 이름도 적혀 있었다. 언젠가부터 섬을 잇는 다리가 생겨나면서 섬이란 의미를 잃어버린 고향이었다. 바다에 떠 있는 섬을 버스로 가야 된다는 건 편하긴 했지만 제 맛은 없었다. 멀미 때문에 배 밑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던, 여객선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 배를 탈 수 있다면 고향을 선택했을지 몰랐다. 여자는 한참을 그렇게 행선지만 열심히 읽어내려 갔다. 결국 마땅한 곳을 정하지 못하고 중앙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생초 길에 자주 만나는 낯익은 시장이었다. 온갖 삶이 전시되어 있는 골목을 한 바퀴 돌고나면 잃었던 생기를 다시 찾아내곤 했다. 여자는 허름하게 자리한 식당 앞에서 가방소리를 멈추었다. 비빔밥 집이었다. 요란하지 않는, 허름한 문턱부터 맘이 들었다. 비좁은 가게 안을 피해 길가 평상에 앉아 어쩌면 생에 마지막이될지 모르는 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리곤 시장 풍경에 멍히 눈을 주고 있었다. 좁은 시장 길을 오가는 사람들, 골목 끄트머리, 시끌벅적한 과자점이 눈에 띄었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맛보기는 공짜입니다.’

현수막 내용이 싱긋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노란 바탕에 붉게 적힌 글을 여자는 두 번이나 읽었다. 현수막 밑에는 두 남자가 분주했다. 호객행위에 열심인 남자, 또 저울의 눈금을 읽곤 봉지를 건네는 남자였다. 여자는 무엇에 홀린 듯 얼른 자리에 일어났다. 과자가게 가까이 다가갔다. 좌판대 앞에는 많은 손님들로 들붐비고 있었다. 현수막 선전을 확인이라도 하듯 과자 맛을 보는 손님들이었다. 키 큰 남자 옆에 운동모자를 깊이 눌러 쓴 소년이 있었다. 웃지 않는 소년의 얼굴이 잠시 낯설었다. 여자는 소년이 잘 보이는 적당한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그리곤 소년의 웃음을 기다렸다. 과자 봉지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 과자를 집어 입에 넣는 사람들, 그 앞쪽의 남자는 손뼉까지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맛보는 거는 정말로 공짜입니다요. 막막 잡숴 보이소.” 약장수처럼 시끄러운 남자 옆이었다. 가득 담은 과자봉지를 손님에게 건네주며 소년은 거스름돈을 헤아리는 중이었다. 잔돈을 건네던 소년이 손님에게 시익, 웃음을 던졌다. 그러자 덧니가 드러났다. 코밑엔 앳된 수염이 돋아나 있었다. 생초와 아버지를 언급하던, 티브이 화면 속의 그 소년이었다. 전류에 마비된 듯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거스름돈을 챙겨 줄 때마다 소년은 덧니를 드러내보였다. 형우였다. 거뭇한 콧수염을 방치한 채, 과자를 팔고 거스름돈을 건네주는, 열일곱의 형우가 잠기는 눈으로 환히 웃고 있었다. 가방을 세워 둔 식당은 까맣게 잊었다. 주문한 비빔밥도 가방과 함께 여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는 그렇게 멍히 서서 정신을 뺏기고 있었다 <[신말수단편소설집①] '너는 아는가, 내 이유를'>-끝- 이어서 내주에는 [신말수단편소설집②] '향수'가 이어집니다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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