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신말수단편소설집①] '너는 아는가, 내 이유를'<2>

기사승인 2021.07.19  20:59:14

공유
default_news_ad2

- 신말수: 김만중 문학상,부천 민족상, 복사골 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 해성고졸업

 생초 땅을 처음 찾아왔을 때도 여자는 나무와 먼저 조우했다. 강을 건너 멀리에 홀로 선 나무,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형우의 나무라는 것을 느꼈다. 형우와 어쩌면 자신의 이유조차 모두 알고 있을 나무라는 생각도.

물가에 서서 어둠을 쓸어안고 선 나무와 맘을 주고받았다. 나무와의 대화는 까다로운 격식이 없어 편했다. 그저 마음 하나 열어 두면 모든 소통이 어렵지 않았다. 그 나무와의 교감에서 자신의 삶이 비치어 나왔다. 어렸을 적 세상을 떠난 부모와, 어린 나이로 삶을 마감했던 동생의 얼굴도 살아났다. 좋았던 시절의, 그리고 등을 돌려 떠나던 남편의 모습도 떠올랐다. 여자가 살아냈던 시간들이 그 나무 앞에서 차례대로 펼쳐졌다간 크레디트 엔딩 자막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얼마를 그렇게 서 있었을까, 추위에 몸이 얼어가는 것 같았다. 시려오는 체온으로 여자는 비로소 한데 놓여진 자신의 몸을 일깨 웠다. 건드리면 뚝, 하고 부러질 듯 굳어버린 몸을 추스르고 여자는 등을 돌렸다. 둑을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 저만치 불빛이 보였다. 숨은듯 앉은 슈퍼마켓에서 미어져 나오는 빛이었다. 슈퍼마켓은 마을로 통하는 길의 시작쯤에 앉아 있다. 길에 대한 선택은 필요 없었다. 마을로 향한 유일한 길이 슈퍼마켓 불빛 앞에 주저앉아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가겟집 대머리 주인남자는 아직도 늦은 밤을 지키고 있었다. 늦은 밤, 이렇게 중얼거리던 여자는 휴대폰의 시각을 확인을 해 보았다. 8시 37분, 진주를 빠져 나올 때에도 차창 밖에 어둑어둑 매달리던 어둠이었다. 밤이 일찍 찾아오는 시골, 마을은 이즈막한 적막 속에 갈앉아 있었다. 불빛에 이끌리듯 무작정 가게 문을 열었다. 남자는 처음 만났을 적부터 대머리 조짐을 암시했었다. 탈모가 시작되던 너른 이마가 이젠 지난 세월의 증거처럼 넓은 밭을 갈아내었다. 그 대머리에 불빛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일과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열린 책상서랍에서 버스표를 정리하고 금고의 지폐를 헤아리고 있었다. 지폐를 움켜쥔 채 문 옆에 세워 둔 여자의 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가방과 여자를 번갈아 힐끔거리던 남자의 눈길에서 얼른 기억을 찾아내는 표정을 보았다. 말 한 마디 없이 물 한 병 값을 치르고 여자는 가방을 끌고 나왔다. 어둔 골목에 들어섰다. 어둠을 거부하듯 가방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돌부리에 걸리는 바퀴 소리가 마치 자신의 절규 같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아직은 살아 있다, 그 살아있음을 증명 하는 여자의 외마디이기도 했다. 저만치 백년장 여관 글자가 긴 굴뚝에 매달려 있었다. 남편과 이혼을 했을 때도 맨 먼저 생각난 것도 이곳 생초 땅이었다.

 그때에도 여자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먼 길을 찾아왔다. 여관을 일러 준 사람도 가겟집 남자였다. 목욕탕을 개조한 여관이라 아주 낡았다는 남자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 긴 굴뚝을 이해하기 어려울 터였다. 높은 굴뚝은 생뚱맞았다. 마을을 수호하겠다는 듯 목을 길게 빼낸 그 굴뚝이 애처롭고, 초라해 보였다. 낡고 볼폼 없는 , 손님 흔적도 없는 여관 건물의 자존심에 굴뚝은 차라리 상처를 덧칠해주는 것 같았다. 낮은 처마에 매달린 간판에서 맥없는 불빛이 흘러 나왔다.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 미행자를 살피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관 간판이 흘리는 흐린 불빛 앞에서 한참이나 염탐꾼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카운터 역할을 대신하는 골방의 덧창 앞에서 암말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여자의 기척을 뒤늦게 알아챈 겔까, 뙤창 속에 낯익은 얼굴이 담겨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였다. 변한 건 없었다. 다만 단발이었던 주인 여자가 곱슬거리는 파머머리로 바뀐 것 말고는. 
불빛에 엇비치는 얼굴에 언제 들어와 앉았는지 나잇살이 배어 있었다. 주인여자는 한마디 말도 없이 숙박료만 받았다. 오만 원권으로 지불한 거스름돈에는 지난번보다 오천 원이 비워 있었다. 아주 조금씩 올라가는 숙박료와 면적을 넓혀나가는 가게 주인의 대머리, 그것들은 이 마을을 흘러가는 시간의 증명 같았다.  방을 빌려주고 받는 거래에도 별스런 대화가 필요 없었다. 여자는 건네주는 열쇠를 손에 움켜쥐고 어둑한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 안에는 가방 바퀴가 내지르는 소리만 가득 차올랐다. 105호.

가장 끄트머리에 앉은 방 열쇠였다. 방은 여전했다. 낡아 무너질 것 같은, 금방이라도 침대 밑에서 바퀴벌레가 기어 나올 것 같은, 방은 아무런 변화 없이 여자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 세상이 변화에 휩쓸려 제멋대로 흘러가도 예전과 같은 허름한 침대, 자줏빛 흔적조차 잃어가는  커튼,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치 같았다. 자신만을 위해 기다려 준 무대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는 천천히 그런 방안을 둘러보았 다. 고향으로 돌아온 듯 맘이 편했다. 버릇처럼 문을 잠갔다. 외투를 벗어 벽의 못에 걸었다. 바지와 윗도리, 그리고 천천히 속옷까지 벗었다. 안경까지 벗어 침대 머리맡에 얹어두었을 때야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비로소 모든 준비를 완료한 연기자처럼 여자는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곤 견뎌왔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울음은 언제나 경건한 의식이었다. 속의 찌꺼기들을 토해내는 절차였다. 가슴 밑바닥까지 차 있는 불순물들이 울음의 액체를 타고 바깥으로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여자의 눈물에 지나간 삶의 궤적들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한 컷씩 스쳐 지났다. 의사의 표정과 소리 없는 말이 마치 마이머의 입술처럼 움직였다.

여자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장면이었다.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예정된 삶을 훤히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선고를 받은 사형수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몸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고단한 몸무게에서 늘 눈물의 분량을 가늠하곤 했다. 서서히 빠져나간 눈물 때문일까, 여자의 무거웠던 마음도 옷을 벗고 있었다.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머리맡 거울 속에 여자의 알몸이 흐릿하게 담겨 들었다. 퉁퉁 부어 오른 얼굴이 음산했다. 한참이나 그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모습의 여자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동그 랗게 지어 올렸다. 거울 속 여자의 눈도 금방 동그랗게 변했다. 찡 려 보았다. 콧등에 잔뜩 주름이 맺혀 들었다.

자신을 흉내 내는 거울 속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기억에 없는, 아주 낯선 얼굴이었다. 울음을 쏟아버린 마음을 챙긴 후 여자는 맨 위에 벗어 둔 옷부터 입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외투를 껴입고 일어섰다. 문을 잠그고 어둑한 복도를 걸어 나왔다. 신발을 끼워 신는 여자에게 창구의 주인은 무관심했다.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는 것도 예전과 다름없 었다. 마을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모든 시간이 어둠에 잠겨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어둠은 여자의 발자국 소리조차 금방금방 집어 삼켰다. 불안했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 대한 근심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가방을 갖고 올까, 여자는 등을 돌려 여관 불빛을 물끄 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시 앞으로 발길을 떼어 놓았다. 가방은 어차피 그녀의 불안정한 삶을 지탱해 준 소품일 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용감하게 가야할 혼자만의 시간뿐이었다. 연이어 기침을 토했다.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마치 군화를 신은 군인처럼 구령도 붙여 보았다. 합세한 기침이 불안에서 구해주곤 했다. 그래서 여자는 이제 혼자인 게 두렵지 않았다. 

 그냥 어둠에 모든 걸 맡겨 보았다. 멀리 어디에서 내려온 걸까, 여린 달빛이 여자의 발길 앞에 내려앉았다. 골목길을 톺아 마을 뒤편에 앉은 학교를 향했다. 여자의 기억에 익숙하게 앉은 길을 앞질러 발길이 먼저 서둘렀다. 익숙하다, 여자는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익숙하다는 건 손잡았던 시간의 쌓여있음이다. 지친 삶을 견뎌낼 수 없을 때마다 찾아 나서던 형우의 땅이었다. 여자의 세월이 터득해 놓은 길의 생리였다.초등학교가 맨 앞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사 가운데를 관통한 통로를 빠져 나가면 제법 높은 철봉대와 농구대 그리고 축구 골대가 있는 운동장이 또 나왔다. 초등학교 뒤에 나란한 앉음새의 중학교 교정이다. 그 방법을 거치면 뒤쪽엔 물론 고등학교가 비슷한 모양새로 또 앉아 있을 터였다. 여자는 한번도 뒤편의 마지막 운동장을 밟아본 적이 없다. 중심에 앉은 중학교 교정만 필요할 뿐이었다. 야산에서 내려온 그림자를 옆구리에 내려놓은 건물은 달빛을 몸에 두른 채 숨죽여 앉아 있었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ad4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ad43
ad44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