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신말수단편소설집①] '너는 아는가, 내 이유를'<1>

기사승인 2021.07.12  20:54:24

공유
default_news_ad2

- 신말수: 김만중 문학상,부천 민족상, 복사골 문학상 등을 수상한 지세포출신 여류소설가

단편소설집①-'너는 아는가, 내 이유를'<1>

폐암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여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수술이 가능하냐, 그러면 얼마나 목숨 줄을 붙잡을 수 있느냐,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남아있는 삶 의 용량은 얼마쯤인가, 그런 상식적인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술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삶과, 수술 후의 삶, 그런 계산이 시시 부지하게 느껴졌다. 설령 그 질문을 떠올렸어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 그 말을 입에 물고 있다간 삼키고 말았다. 그때 환청이듯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가 들려왔기 때 문이었다. 기침 소리는 확성기로 빠져나오듯 요란했다. 기침 끝에 손 안 가득 쏟아내던 핏덩이.

여자는 그냥 암말 없이 자리에 일어섰다. 다음 말을 입에 물고 있던 의사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포기하지 못하는 의사의 눈빛을 등지고 문을 열고 나왔을 뿐이었다.왜 구차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을까, 여자는 그런 자신의 마음에 부아가 차올랐다. 기침 따라 고여 든 손바닥 핏덩이를 짐작하면 폐의 질환은 결코 여자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 단정했다. 그 기침 때문에 세상 떠난 아버지의 병력까지 들먹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여자의 머릿속을 다녀가곤 했다. 

 이혼한 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히 전해지던 남편의 얼굴도 떠올랐다.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남편은 거침돌로 남아 있었을 것이었다. 잘한 일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남편은 아이가 없다는 이유를 핑계로 내세웠지만 여자는 알고 있었다. 한 여자를 숨겨 둔 채 결혼을 했고 남편은 그 관계를 정리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 이유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머뭇거리고 살았던 건 단지 절차가 귀찮았을 뿐이었다. 남편이 먼저 서둘러 주어 다행이었다. 남편은 아이를 갖게 된 제 여자에 대해 너스레 같은 변명을 시작했다. 길게 늘어놓는 남편의 이야기에 간단한 쐐기를 박은 것도 여자였다.
됐어요. 정리해요.
이혼 처리를 하고 법원을 나서면서 여자는 먼저 어디 먹을 곳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해가 중천을 지나는 시간에 삼겹살 2인분에 소주 한병까지 비웠다. 배가 불렀고 약간의 취기까지 가세하니 인생이 그렇게 쓸쓸한 것만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아니 세상은 아직까지 여자가 살아갈 만한 이유가 있는 지대로 보였다. 임신 불가, 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던 병원 문 앞에서도 어디 점심 먹을 만한 데가 없을까, 하고 먼저 살펴보았다.
 
마침 길 건너, 요란한 해장국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찾아 한참이나 걸어갔다. 유달리 여자 손님이 많은 그 식당에서 해장국 한 사발을 거뜬히 비웠다. 배가 부르니 살 것 같았다. 뱃속을 채운 음식이 힘이 되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병원 문을 열고 나왔지만 식당이 눈에 뵈지 않았다. 보이지 않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들픈 마음이 일부러 식당을 기피하고 있었으리라. 기운 없이 버스를 탔다. 기침이 모든 욕구를 가로막고 나섰다. 집으로 돌아와 버릇처럼 식탁에 앉았어도 마찬가지였다. 먹어야 산다, 먹는 것이 힘이다. 먹을거리 앞에서 구호처럼 외치던 친구가 생각났다. 먹는 것이 곧 삶이고 힘이라던 그 말의 뜻을 여자는 이제 알 것 같았다

버스 속에서 의식을 건드렸던 건 장롱 속의 가방이었다. 한동안 방랑벽을 방치해둔 가방이 여자의 마음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형우를 떠올린 건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였다. 아니 전날 밤 본 티브이 속 소년의 정체라고 말하는 게 분명할 것이다. 생초입니다, 소년은 형우가 살았던 곳의 지명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소년이 말한 형우의 땅을 떠올린 것도 가방의 음모였을 거라고 여자는 의심했다. 열일곱 살 형우의 마지막 이미지가 화면 속 소년의 입언저리에 앉아 있었다. 형우가 자신의 죽음과 어떤 끈으로 이어져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도 그 소년 이었다. 주섬주섬 챙겨 놓은 먹을거리들 앞에서도 생각을 부리고 있는 건 여행용 가방이었다. 숟갈을 들고 한바탕 기침을 쏟아냈다. 빨갛게 물든 휴지를 보다말고 여자는 장롱, 수납장을 뒤졌다. 가방은 그대로였다. 오랫동안 묵혀 둔 가방은 무료함으로 낡아가는 중 이었다. 지퍼를 열어 보았다. 바닥이 다 드러나도록 입을 벌린 가방 밑에 구겨진 종이쪽지가 보였다. 가방 속에 오래 눌러 붙어 누렇게 변한 쪽지였다. 뭘까, 맘은 궁금해 했지만 얼른 손이 가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하찮아 보였다. 지퍼가 열린 가방 입을 거꾸로 세워 종이를 털어냈다. 방바닥에 떨어진 쪽지 끄트머리에 미어져 나온 문자는 일본글이었다. 여자는 언젠가 남편과 다녀왔던 북해도를 떠올렸다. 일주일 내내 눈만 보고 왔던 설국, 그 어디쯤에서의 흔적일 것이었다.

헤 입을 벌린 가방 속에 옷가지를 챙겨 넣었다. 마치 돌아오지 않을 여행이듯 손은 계절과 무관한 것까지도 욕심 부리고 있었다. 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쑤셔 넣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은 몸의 일부가 아닌, 마치 다른 기관에서  염탐 나온 스파이 같았다. 가방은 이미 충분히 배가 불러지고 있었다. 그랬어도 여자의 손은 옷장 속을 탐내고 있었다. 옷장을 훑는 손을 방관하는 동안 여자의 머릿속에는 소년만 떠올랐다. 그 소년을 보지 못했더라면 여자는 지도를 펼쳐 놓고 틀림없이 게임을 했을 것이었다. 포물선을 넓게 그려 놓은 지도에 주사위를 던지고, 걸려든 도시의 이름 앞에서 자신의 결정을 그 주사위에 핑계 댔을지 몰랐다.

여자의 두 손은 어느덧 가방을 잠그기 위해 끙끙대고 있었다. 입을 앙다물고 있는 지퍼를 올리기 위해 내용물을 힘껏 눌러대는 손을 뒤집어 보았다. 손바닥이었다.유달리 짧은 생명선, 마치 달려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듯 갑작스레 멈춘 선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마구잡이로 옷가지를 챙기는 손의 행위를 주도한 것도 바닥을 가로지르는 생명선이 아니었을까, 잠시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형우의 죽음과 코 위로 모자이크 처리된 그 소년과의 어떤 관계도, 그리고 이 여행의 모든 이유가 유달리 짧은 생명선의 계략
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속이 꽉 찬 캐리카를 끌고 나오는 아침, 앞집 여자와 마주쳤다. 어디 멀리 가시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네, 하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웃여자의 관심을 떨쳐버리고 등을 돌려 걸음질을 재촉했 다. 해외로 나가느냐고 다시 물었다. 여자는 이쯤에서 말장난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얼른 엘리베이터 잠금버턴을 눌렀다. 그녀가 또 물어온다면 북해도, 라고 대답할 참이었다. 여자는 버스터미널에서 진주 행 버스표를 샀다.  생초면 작은 마을에 도착한 건 이슥한 밤이었다. 버스에 내린 여자는 어둠에 스며들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눈이 아프도록 감았 다가 다시 떴다. 어둠이 주위를 내주기 시작했다. 하늘엔 별이 총 총 박혀 있었고, 아흐레쯤 되었을까,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한 달이 생초 마을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둑한 삼거리 길에 서서 여자는 자신이 왜 이곳에 서 있는가, 그 이유를 잠깐  놓치고 말았다. 마치 집에 두고 온 지갑처럼 불안했다. 여자를 버리고 떠난 버스가 저만치 고갯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버스의 미등은 이내 어둠 속에 젖어들고 말았다. 다시 봉합된 어둠이 제자리로 찾아들었을 때에야 여자는 미열 같은 외로움을 느꼈다. 사방 어둠천지인 곳에 홀로 버려졌다는, 낯선 곳에서 길 잃은 아이처럼 혼자라는 두려움이 슬슬 마음 언저리를 파고들었다. 찬바람에 내몰린 목에서 자꾸 기침만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어디선가 가만가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은밀한 강의 소리였다. 경호강, 여자는 비로소 안정을 찾 았다. 불안에서 풀려난 맘은 강이 호흡하는 소리를 향해 귀를 열었다. 겨울의 경호강이었다. 여자는 엄살이, 가식이 없는 겨울 강의 맑은 물소리를 좋아했다. 발가벗은 나무처럼 허영을 걸치지 않아서 좋았다. 어둔 물길을 흘러가는 경호강은 세상에 지쳐있던 끈들을 슬며시 풀어주었다. 몸과, 마음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들이 느슨하게 풀어지고 있었다.

어둠을 더듬어 한길을 가로질렀다. 강가에 내려서니 멀리에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었다. 희미한 달빛으로 몸을 두르고 선 나목. 걸음을 멈추고 여자는 벌거벗은 그 나무를 응시했다. 그 나무도 그대로 였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모습으로 경호강을 지키고 있었다. 너는 아는가, 내 이유를.  형우가 써 내려간 앞자락의 많은 글들은 기억이 흘려버리고 없 다. 사라진 시구들은 애써 찾아내고 싶지 않았다. 강 건너에 외로운 나무 한 그루만 서있는 카드 안이었다. 그 속에 꼬리처럼 달려 있던 마지막 시구만 여자의 뇌리에 붙박여 있을 뿐이다. 그것만이면 충분했다. 여자에게 더 이상의 언어는 필요하지 않았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ad4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ad43
ad44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