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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목 김주근]'거제시, "해상사고(海上事故)로 작고(作故)한 시민" 위한 위령탑(慰靈塔)과 공원(公園)을 조성(造成)하자'

기사승인 2021.03.07  04: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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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근: 호 자목/(주)신한기업대표/시인/수필가

거제도는 신기하게도 섬 전체가 바다 위에 독수리 모양으로 형상(形像)된 섬이다. 바다는 썰물이 되면 조개류(바지락, 맛조개 등), 고동. 게, 해삼, 홍합, 문어. 미역. 톳나물,  모재기. 파래 등을 캐어 온 가족이 먹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된다.

내가 태어난 관송(貫松)마을(현재 아양동 대우조선해양 회사 내)은 바닷가에 집이 있기에 집 뒤 돌담 울타리에서 바닷물이 밀물로 만조가 되었을 때 근접한 거리는 약 이십미터 거리로 가까웠다.

태풍(颱風)이 오면 바다와 멀리 떨어진 중간 마을까지 피난(避難)을 연중행사처럼 몇 번이고 간다.아버지는 바람이 불지 않는 칠흑같은 밤이 되면 썰물 때(여섯 물에서 열 물 사이)를 맞추어 바지를 장딴지 부위까지 올리고 미리 준비를 한 도구(막대기에 철사로 연결한 솜뭉치)에 바닷가에서 석유를 묻혀서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어머니는 물이 없는 바닷가에 위치하고, 나는 물이 무릎까지 위치가 되도록 자리를 잡고, 아버지께서도 물이 무릎 정도 오도록 약간 깊은 곳에 위치했다.물속에는 게가 넓게 분포되어 있기에 내가 위치한 곳에도, 아버지께서 위치한 곳에도, 게가 있었다.

물속에서 빠른 속도로 걸어가면 물살이 일렁거려서 게와 돌을 분별하기가 어렵다.아버지는 횃불을 들고 앞과 좌, 우로 손으로 천천히 움직여서 물체를 확인한다. 게잡기는 아버지와 필자가 담당이다.

붕장어(붕장어 중심부에 낫으로 가로채어 물이 없는 곳으로 올려놓는다.)는 어머니께서 손전등으로 붕장어를 찾아서 바케스통에 담는 담당을 했다.

도다리(창을 이용하여 잡음)와 잡어생선(밤에는 물고기들이 움직임이 둔하여 발로 모래를 조금씩 일구어 방향을 흐리게 하여 창으로 잡음)은 아버지 담당이다.모래가 있는 곳에는 대합조개를 잡기도 한다.간혹 돌문어가 횃불 쪽으로 와서 돌에 안착 하면 아버지께서 창으로 잡는다. 우리가족은 바닷가를 약 두 시간 반 정도 수고하고 집으로 귀가한다.

주로 게를 잡는 것이 주 목적이고 그 외에 잡이는 반찬거리로 사용된다. 바다 게는 양동이(양철로 만든 동이)에 담아 놓고, 기어서 나오지 못하게 그물망으로 덮어 놓으면, 밤새도록 특유한 소리에 잠을 설치 곤 했다.

어머니는 새벽을 깨우고 게를 이고 집에서 신작로를 따라 걸어서 장승포 읍(약 2.5km)에까지 가서 팔아서, 쌀과 보리를 구매(購買)하여, 살림을 꾸려갔다. 바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부지런하면 먹을 것이 많아서 허기(虛飢)를 채울 수 있었다. 거제도는 오랜 세월부터 오늘까지 크고 작은 배들이 지역마다 분포되어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여 생계(生計)를 이어왔다.

배의 종류도 다양(多樣)하다.
돛단배, 소형어선, 저인망어선, 원양어선,  여객선, 상선, 화물선, 무역선,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서 건조하여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떠다니는 섬 같은 배 등 다양하다.

지금처럼 일기예보(日氣豫報)가 발달하기 전에는 어부의 일기예보는 어떻게 대처 했을까? 나는 유년시절 고기잡이를 하시는 아버지로부터 동네 할아버지까지 연세가 많으신 분들께서 일기예보에 대하여 말씀을 들어보면...

해가 서쪽 하늘에 넘어갈 때 쯤 산(국사봉) 위쪽 하늘에서 조그마한 검정구름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태구름이 지나가는 구나" "내일은 바람이 거세게 불겠다."라고 "직감 일기예보"를 하시었다.  즉, 내일부터 며칠 동안 샛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아서 조업을 못하는 불길한 예감(豫感)의 구름이다.

다음 날이면 "직감 일기예보"가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적중(的中)한다.나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일기를 알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마음속에 들었지만 어른에게 "여쭈어" 보는 용기가 없었다.

라디오가 활성화 되는 시대에는 어부는 일기예보에 민감하여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손이닿는 곳에 두고 항상 듣는 것이 일상생활이었다. 어부는 단도리를 철저히 하여도 바다의 변화는 무상하여 순간적으로 사고가 난다.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거나 조류(潮流)에 실종(失踪)되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례가 빈번했다.

실종된 유족들은 시신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해녀와 잠수부를 동원하고, 배를 타고 다니면서 며칠이고, 한 달이고, 찾고 찾아다닌다.바다를 보고, 목 놓아 울고, 울면서, 바닷가를 거닐면서, 넋 나간 사람처럼, 애타게 찾는 심정은 어디에 비유하랴?

거제도는 해상 사고로 목숨을 잃고, 실종된 가족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로 많았던 것으로 짐작을 한다. 유족들 중에 그 충격(실종)으로 바다와 담을 쌓았다고 말하기도 한다.어떤 분은 시퍼런 바닷물만 보아도 무서움증이 발동하여 바다가 보기 싫다고도 한다.

그리해도 거제도는 날마다 보이는 곳이 바다다.
필자의 아버지(고등어 잡이 배 어부)도, 세번째 큰아버지(사라호 태풍으로 고등어 잡이 배(목선)가 전파됨)도, 배를 타고 가서 실종되었다.

필자는 "낚시를 즐긴다."작고하신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아버지를 물에 넣고 왜 낚시를 가느냐."고 울면서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혹시 "아버지께서 낚시 줄을 잡고 올라 올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낚시를 간다. "오늘은 아버지를 만나겠지?" 하면서 선상낚시를 간혹 간다.실종자 유족들은 가슴에 묻어둔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는 사연들...

거제도민 중에는 바다의 사연들이 바닷물 깊숙이 수장되어 있다. 명절이나 기일이 되어도 묘지가 없어서 갈 곳을 잃은 나그네처럼 허전한 마음을 어디에 둘 곳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아버지께서 해상사고로 실종된 기일(忌日)이다.한 배를 타고 있었던 실종하신 유족들이 거제시에 다수 있다.그 가족들도 나와 함께 고인의 기일을 추도(追悼)하는 날이다.

거제도에는 바다와 밀접한 관계로 바다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위로의 장소가 없다.거제시 지도자들과 행정에서 해상사고로 돌아가신 분의 넋이라도 위로하고, 가족들이 추모(追慕)할 수 있도록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보라보는 곳에 합동 추모탑과 공원을 만들어 줄 것을 건의한다.(2021.03.06)

거제타임라인 webmaster@gjtline.kr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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