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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38]신종만-'철없는 진달래 '

기사승인 2020.12.04  00: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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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만:둔덕출생(1963년)/통영상고졸/사회적기업(주)연연칠백리근무/고려사연구회원/사회적기업협의회사무국장/능곡시조교실수강

[금요거제시조選-38]
                            '철없는  진달래'  

                              신   종   만

                          어쩌다 핀 진달래에
                          웬 호들갑 하겠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

                          시절이 어지럽다고
                          너까지 이러느냐.

                          삼짇날 헤아리니
                          까마득 세월인데

                          지레 온 그 속내를
                          누군들 알까마는

                          두견이 우는 그날엔
                          너 어찌하려는가.

◎ 두향(杜香), 그 지순한 사랑
  매화는 꽃 모양이 벚꽃과 비슷하지만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배꽃같이 야하지도 않다. 청아하고 담백한 매화꽃은 향기 또한 고고하고 은근하여 예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아 왔다. 특히 그 향기는 은은한 품이 코를 톡 쏘는 듯한 야래향(夜來香)이나 계화(桂花)하고도 다르며 나도 풍란의 향기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또 고색을 띤 간피(幹皮)도 아취가 있으며 문인목(文人木)의 모습은 그 풍정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매화는 대략 입춘을 전후하여 피는데 말이 입춘이지 겨울 추위가 채 가시기 전이라 사람들은 눈 속에서 피는 설중매를 찾아 나섰는데 이를 탐매(探梅)라 한다.매화의 원산지는 중국의 사천성 및 하북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원래 매목(梅木)이라 했으나, 다시 매화(梅花), 매자(梅子)로 불렀다. 매화의 기본종은 백화(白花)이나 다수의 원예 품종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 원예품종을 꽃 색으로 ‘백매(白梅)’와 ‘홍매(紅梅)’로 크게 나누며, 열매를 맺느냐 못 맺느냐에 따라 ‘실매(實梅)’와 ‘화매(花梅)’로 구분한다.

백매는 뭇 꽃 가운데 으뜸으로 쳐 화형(花兄), 화괴(花魁)라 불리어 왔다. 매화는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이름은 호문목(好文木)이다. 호문목의 내력은 진(晋) 나라의 문학이 한창 성해지니 매화 역시 아름답게 피었고, 후에 문학이 쇠퇴하니 그 그림자조차 없게 되므로 호문목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매화의 매력은 추위에 굴하지 않고 청초한 꽃을 피우고 청아한 향기를 풍기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예부터 문인·묵객에게 사랑을 받는 원인이기도 했다.

소동파는 매화를 얼음같이 맑은 혼과 구슬 같이 깨끗한 골격을 가졌다고 극찬을 보내었다. 육사(陸史)는 시 ‘광야’에서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고 노래했으며, 목은(牧隱)은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멀고 먼 구름 밖에서 실의에 차 매화를 그렸다. 조선 중기 문인 신흠(申欽)은 “梅一生寒不賣香”이라고 시 “野言”에서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자태를 읊고 있으며 이 시는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말쑥한 선비, 고고한 은사(隱士), 맵시 있는 여인에 비유되기도 하는 매화의 꽃말은 결백, 미덕이다. 선인들은 매, 국, 송을 삼우(三友)라 일컬었고, 매, 죽, 수선을 삼청(三淸)이라 하리만큼 예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아온 매화다.

매화 사랑을 두고는 퇴계 선생을 빼 놓을 수 없다. 매화를 그야말로 끔직히도 사랑하였으니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의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 군수시절에 만났던 18세의 관기 杜香 때문이었다.
두향은 세조시절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도모할 때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詩, 書, 琴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 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퇴계의 인품은 익히 알고 있던 터,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선생이었던 터라 흠모하는 두향의 애간장이 어떠하였는지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어 텅빈 퇴계 선생의 가슴을 한 떨기 설중매 같았던 두향이 채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신분과 나이를 뛰어 넘은 두 사람 사랑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겨우 9개월에 끝이 났다. 퇴계 선생이 당시의 사정으로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짧은 인연, 갑작스런 이별, 두향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변고였으리라. 이별을 앞둔 그날 밤은 깊었다.  말문을 연 이는 퇴계 선생이었다.“내일이면 떠난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시 한 수를 읊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들고 슬피울제
        어느덧 술 다하고 님마져 가는 구나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긴 이별이었다. 21년간이었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수석은 남한강 오석(烏石)이었지 싶다. 남한강 오석은 석질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퇴계 선생은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두향을 보듯 사랑했다. 병약해지자 매화에게 초췌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매화 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을 떠난 보낸 뒤 두향은 간곡히 청하여 관기에서 빠져 나와 선생과 자주 갔었던 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나 말년에 안동에 은거했다. 두향은 선생께 누가 될까봐 찾지를 않았다.“매화에 물을 주거라” 퇴계 선생의 유언이었다. 그 유언 속에는 가슴에 두향이 가득했다는 증거이리라.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 걸어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졌다. 퇴계 선생과 노닐었던 강변에 묻어 주기를 희망했던 평소의 원대로 묻히었다. 

그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단양의 절경과 매화를 소재로 서화(書話)를 나누었던 두 사람은 서로가 소중한 존재였다. 퇴계의 제자 이산해는 스승의 마음을 헤아려 한일합방이 될 때 까지 두향의 제사를 모시게 했다. 퇴계의 후손들도 충주댐 건설 당시 두향의 묘가 수몰 당할 위기에 처하자 강선제로 옮기어 수몰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단양군에서는 ‘퇴계와 두향의 사랑’ 테마 공원을 조성하였고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오는 두향을 추모하는 두향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매화를 사랑하되 꽃을 탐내는 일 없이 오히려 맑고 은밀한 화심(花心), 그 품향(稟香)을 붓 끝으로 기리어 삶의 자세를 가다듬던 선인들의 생활이 매화 향기로 남아 시공을 넘어 풋풋한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에도 부동(浮動)하고 있는 것이다.후세 사람들은 퇴계 선생을 기리어 천원권 지폐에 선생의 초상화와 함께 매화도 그려 넣었다.아! 폐덕의 시대에 퇴계 선생과 두향의 절제된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혼란의 시기가 잘 극복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거제엔 전국에서 제일 먼저 피는 춘당매(春堂梅)가 있는 고장이다. 춘당매로 해서 거제는 ‘매화의 고장’반열에 들게 되었다.{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철없는 진달래〉는 신종만 시인의 작품이다.2수 연작으로 초겨울에 핀 진달래에 대한 심회를 읊었다.

 첫 수에선 하수상한 시절에 대한 두려움이 엿보인다. / 어쩌다 핀 진달래에 웬 호들갑 하겠지만 / 코로나 19로 세상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보니 이것도 무슨 변고인가 하여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 /워 한다. / 시절이 어지럽다고 너까지 이러느냐 / 고 짐짓 두려움을 진달래에게 탓한다. 소소한 일상이라면 예사로 보아 넘길만도 하건만.

 둘째 수에선 지레 핀 꽃에 대한 조바심이 읽힌다. 진달래가 피어날 / 삼짇날 헤아리니 까마득 세월인데 / 삼동은 이제 시작이고 북풍한설이 소롯이 남았는데 철모르고 / 지레 온 그 속내를 누군들 알까마는 / 행여 이 혼돈의 세상을 탓하는 경고라도 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지레 온 그 속내를 알 길이 없다만 정작 / 두견이 우는 그날엔 너 어찌 하려는가 / 하고 안타까운 심사를 진달래에게 묻고 있다.
 

\첫째 수 / 너까지 이러느냐/ 와 둘째 수 / 너 어찌 하려는가 / 의 결구를 빚은 솜씨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 준다. 세상의 꽃들은 필 때를 알고 질 때도 알고 있다. 더 일찍 피고 싶어 안달하는 꽃도 없고, 더 빨리 지고 싶어 서두르는 꽃도 없다. 매화 피는 가 했더니 진달래 피고 뒤이어 개나리며 벚꽃이 핀다. 이것이 하늘이 다스리는 순리다. 그래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하지 않던가.

 얼마전엔 도로변에 가로수로 심겨진 벚꽃이 피었다고, 그것도 한 두 그루가 아니고 줄을 지어 피었다고 야단 들이었다. 이번엔 진달래다. 그것도 초겨울에 말이다. 예전 같으면 예사로 보아 넘길 만도 하건만 시인은 두려움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코로나 19로 멈춰버린 세상이다. 어떤 이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이기심과 무지몽매가 빚어낸 난개발에 대한 자연의 경고가 코로나19라고 진단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기상이변 등으로 수차례 경고음을 보내었으나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리와 도덕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였고, 오로지 먹고 싸고 즐기는 쪽으로 만 눈을 돌리어 더 이상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폐덕의 시대, 상놈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무섭기 그지없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도 시를 쓴다. 그의 시는 단순한 욕망의 분출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시인은 삼짇날을 헤아리고 있다. 시인이 헤아리는 삼짇날이 지난날 꽃피고 새 울던 삼짇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하수상한 세월 탓이다. 그러나 삼짇날을 기다려야 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린 영랑 시인처럼 말이다.
 두견이 우는 삼짇날에 시인은 진달래에게 묻지 싶다. ‘지레갔던 속내가 무엇이었느냐고’
 코로나19가 창궐한다는 겨울이 두렵다. 싱겁기만 했던 일상, 그 소소한 일상이 마냥 그립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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