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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을 여는 시(166): 손성삼] '간판'

기사승인 2020.11.16  01: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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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성삼:거제대학 전산과졸업/ 전)거제축산농협 근무/ 현)(주)칸정공내 협력사 근무/눌산문예창작교실 수강

월요일 아침을 여는 시 (166)

       '간 판'

 

 

 

   
 


   손   성   삼

음료수 병 네 개에서 간판을 떼어냈다

그들에게 새롭게 내려진 정의는
빨간빛 노란빛 보랏빛 초록빛
액체들의 집합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이것저것’이 되어
잘 팔리고 있었다

우리에게서 간판을 지웠다

긴 머리 짧은 머리 키 작고 키 크고
뚱뚱하고 말랐고 늙고 젊고 남자 여자

우리는 정의할 수 없어 ‘어이’가 되었다

이것저것들이 진열된 곳을 지나쳐가다가
‘어이’하고 부르면 모두가 예외 없이 고개를
돌려 백조가 된다

감상) 

눌산 윤일광 시인

참으로 예리한 눈으로 이 시대를 비판한 알레고리 작품이다.우리가 어떤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그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은 순전히 간판 때문이다. 만일 네 가지의 음료수가 있다고 치자. 사람들은 그 음료수의 내용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병에 붙여 있는 라벨로 음료수의 질을 평가한다.

그래서 그 네 개의 음료수병에 붙여 있는 라벨을 떼어내어 보자. 그러면 「그들에게 새롭게 내려진 정의는 /빨간빛 노란빛 보랏빛 초록빛 /액체들의 집합」일 뿐이다. 「그들의 이름은 ‘이것저것’이 되어 /잘 팔리고 있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의 라벨’ 이럴 테면 부자와 가난,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잘 생김과 못 생김 심지어 키가 큰 것과 작은 것, 머리카락이 긴 것과 짧은 것, 늙음과 젊음까지 모두 떼 내고 나면 「우리는 정의할 수 없어 ‘어이’가 된다」

인간존재의 본연에 대해 시인은 심각한 철학적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물의 실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껍데기만 보고 평가한다. 철학은 문학이 아니지만, 문학은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가 보여주고 있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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