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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미 수필27] '지판'

기사승인 2020.09.21  0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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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수필당선자

 의식이다. 어떤 악기든 연주 전에 조율을 한다. 제 음가를 가지기 위해서다. 마치 연장을 정비하고 기초 공사를 하는 것과 같다. 기타와 달리 바이올린 지판 위에는 플랫이 없다. 플랫은 금속의 띠 모양으로 지판 위에 박혀 음계를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은 막막하다. 테이프로 임시 소리점을 지판 위에 붙인다. 찾아내려는 소리의 지점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시각에 의존한 소리가 기억되면 테이프를 떼어내고, 청각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자리점을 찾아내야 한다. 수없이 반복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후, 본능적인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야만 정확한 음을 짚어낼 수 있다. 마치 지판은 구도자의 순례지와도 같다. 끝임 없는 오류와 번민을 받아들이고 잠재운다.      

  정확한 음의 구간들을 찾아가게 하는 소리점이 삶의 구간에도 있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때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너무 의지해서 자신의 감각을 열지 않으면 지판 위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갇히게 된다. 내 마음 속 지판에도 오랫동안 떼지 못하는 테이프가 있다. 어머니는 내게 그런 분이셨다. 지판 위를 스스로 짚을 수 있을 시점에도 항상 계셨다. 나는 머뭇거렸고 정확한 지점에 올려놓고도 조바심을 냈다. 지금 되돌아보면 삶의 진실들은 지판의 맨바닥에서 헤매기도 하고, 헛짚어 다른 소리를 내게 되는 나의 시행착오 속에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연주를 하게 된다. 같이 연주를 하는 동안 박자에 맞추어야만 한다. 박자는 삶이 진행되는 시간을 헤아리는 단위일 수도 있다. 본질과 교통할 수 있는, 모든 합의점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낙천적인 느린 박자도, 휘몰아 치는 빠른 박자도, 각각의 길이는 독립되어 있지만 지판 위에서는 공존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오롯이 내 소리에만 집중하느라 남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츰 남의 소리가 들리고 그것에 나의 소리가 되비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의 탈피를 통해야만 외부와 연결된 세계로 들어갈 수 도 있다. 그것은 내면으로 다시 순환하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가 지닌 양면성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느낀다는 건 외부 대상으로부터 반증되어 오는 모습을 수용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본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항시 오감을 열어 두어야 한다.

지판은 통속적이다. 악보를 벗어나고 선율을 이탈하는 악기소리와도 같다. 누군가와 반드시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욕망은 때때로 다른 이와 갈등하고 충돌하며 합의점을 찾으려 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한 맥락인지도 모른다. 내가 찾고자하는 지판 위의 한 점일 수도 있다.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팽팽함과 느슨함이 알맞아야 제 소리를 내며 세상으로 나간다.

  삶도 지판 위의 줄처럼 단번에 조율되지 않는다. 조율해 둔 줄도 짚다보면 느슨해진다. 느슨해져 제 음역을 잃어버린 줄을 다시 잡아당겨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연주 도중에 조율은 허락되지 않고 잘못 짚은 음은 인생처럼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놓쳐버린 박자의 생각으로 자신을 가두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내면과 교통하며 끊임없이 상대의 소리를 듣고 화음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연주자끼리의 교감과 소통은 우리 내면의 깊은 상처와 갈등을 치유시킨다. 화려한 기교가 없는 소박한 선율일지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때는 화려한 솔로만 돋보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알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낮은 음역대에서 묵묵히 보조하는 역할은 위대한 화합이고 아름다운 울림이다.   

  삶도 사람과 시간을 재료로 하는 예술이다. 우리는 현실이란 지판 위에 숨겨진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본질과 교통할 수 있을 때 누군가의 음을 찾아가게 하는 이정표 같은 소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판 위에서 찾은 삶의 다양한 경험과 사상들은 우리의 가슴에 전달된다. 오랜 세월 습기도 머금고 상처도 가지면서, 자신을 담금질 하다보면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주는 따뜻한 소리로 배어 나올 것이다.

  활을 들어 줄을 켠다. 현들을 조율하기 시작한다. 연주 전에 갖는 의식이다. 각각의 소리는 줄감개의 조절로 합의점을 찾는다. 공명상태의 여음이 따뜻한 소리를 내며 새벽을 가르고 세상으로 나간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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