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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21]윤윤주 - '벚꽃'

기사승인 2020.08.07  09: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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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윤주/웅천찻사발보존연구회원/거농문화예술원실장/동아대서양화전공/능곡시조교실수강

 「금요거제시조選21」
                                  벚 꽃          

                               윤  윤  주

                     창밖의 눈송이 꽃
                     그리움이 출렁인다

                     오라버니 먼 길 떠난
                     그날도 이렇더니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꽃비 되어 내리네.

                     놓지 못한 이승의 끈
                     가슴 칭칭 동여 있어

                     꽃망울 맺힐 때면
                     멍울도 덧이나서

                     한 이레 만개한 꽃에
                     정신줄을 놓는다.                     

     ◎ 짭짤하고 풀리는 시

 유학(儒學)에 심취한 한 선비가 무심히 제비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라,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싶어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 아닌가.
 논어 위정(爲政)편에
    공자 가라사대, 유(由)야 너에게 앎(知)이란 것을 가르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子曰 由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是知也)

라고 한 데가 있는데, 이는 공자가 승벽(勝癖)이 강해서 모르는 것도 곧잘 아는 체 잘하는 자로(子路)를 훈계한 대목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것은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과오를 범하는 일이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데서 아는 길이 열리는 법이거늘 사람도 미처 깨치지 못하는 이치를 제비가 먼저 깨닫고 사람을 훈계하는구나 하고 감격했다는 이 유학광(儒學狂)의 우화(寓話)는 어쩌면 공자의 정신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또 다른 유학광이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시조를 한 자리에 많이 모아 놓은 책―이를테면 시조전문지나 연간 시조집 따위―을 펼쳐놓고 보면 시작(詩作)   태도 면에서 대체로 두 개의 계열로 가를 수가 있다. ‘싱거운 시조와’ ‘안 풀리는 시조’가 그것이다. ‘싱거운 시조’는 서정을 시조의 형식에다 두드려 맞추어놓은 것들이다. 한 편의 시조가 상식의 나열일 때 싱거운 음식 같아서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지 못한다. 저질시조 운운하는 혹평을 듣는 가장 큰 요인은 이런 싱거운 시조의 범람에 있을 것이다. 이런 싱거운 시조에 대해서 ‘안 풀리는 시조’의 일군이 있다. 씹고 곱씹어 보아도 씹히지 않는 쇠심줄 같아서 아무리 분석해도 풀리지 않는다. 요모조모로 쪼아 봐도 쇠끝 한 치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미숙하여 정리되지 않은 이미지를 무책임하게 쏟아놓은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짭짤하고 풀리는 시조는 완숙된 시적 이미지가 하나의 주제 밑에 선명하게 통일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의 시는 분석이 가능하고 독자는 겹쳐 입은 옷을 한 겹씩 벗겨내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어떤 시조가 끝내 풀리지 않는다면 남의 눈을 현혹시키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과오를 저지르는 행위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안 풀리는 시조보다는 저질이란 혹평을 들을망정 싱거운 시조를 쓰는 작가 쪽이 보다 순수하고 소박한 시인이라 할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지는 않으니까.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벚꽃>은 윤윤주 시인의 작품으로 2수 연작의 서정시조다. 시인은 오빠가 돌아가신 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려서 벚꽃만 보면 오빠생각에 가슴이 저린단다. 벚꽃은 그런 심사를 읊었다고 한다.

첫 수는 창밖에 드날리는 꽃잎을 보고/ 그리움이 출렁인다 / 고 초장을 열었다. /오라버니 먼 길 떠난 그날도 이렇더니 / 떨어지는 꽃잎을 두고 먼 길 떠난 오빠를 떠올린다. /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꽃비 되어 내리네 / 라고 애상에 젖은 시인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지 싶다.
 둘째 수엔 오누이의 끈끈한 정은 / 놓지 못한 이승의 끈 가슴 칭칭 동여 있어 / 해마다 사월 초순 / 꽃망울 맺힐 때면 멍울도 덧이나서 / 아린 가슴이 된다. / 한 이레 만개한 꽃에 정신줄을 놓는다 /고 고백한다. 만개한 벚꽃, 그 화려함이라니. ‘정신줄을 놓는다’ 는 결구에 시선이 머문다.

잠시 벚나무 이야기를 해본다. 낙화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정원에 심은 나무로 배, 살구, 복사, 매화 등 여럿이 있다. 그중에서도 매화의 낙화야말로 시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낙화의 미학을 매화로부터 찾아 매화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화우(花雨)라 하여 인생의 무상함에 비유했다. 무엇이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화우를 그냥두지 아니하고 매화와 배꽃이 떨어지는 것을 벚꽃의 낙화로 살짝 바꾸었다. 그래서 하얀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일본의 멋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조선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자라는 무궁화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에서 들여온 왕벚나무를 심었다. 학교 교정에도 벚나무를 심고, 관청을 말할 것도 없고 도로변에도 벚나무로 가로수를 조성하여 이 땅을 왜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임금의 거처였던 창경궁마저 놀이터로 만들면서 토종 꽃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왕벚나무를 심은 것이다.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일본 군국주의 야망은 진해 군항을 온통 왕벚나무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직도 벚나무의 왜색 시비는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의 식물학자들이 DNA 검사에서 일본의 왕벚나무가 제주도 참벚나무와 같은 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제는 벚꽃에 대하여 왜색 시비보다는 하나의 꽃으로 보아주길 바라는 시각이 많은 줄 안다.

시조 작품 <벚꽃>에서의 꽃비(花雨)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앞서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동기간은 어디에 묻는 것일까? 문득 제망매가(祭亡妹歌)가 떠오른다. 제망매가는 신라 때 승려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재(齋)를 올릴 때 지은 10구체의 향가로 <삼국유사>에 전한다.
 현대어로 풀이하면 (김완진 해독)
      생사의 길은 여기에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해마다 4월이면 가슴앓이를 하는 시인. 먼 길 떠난 오라버니를 그리워하는 누이의 애틋한 정을 독자로 하여금 낙화하는 꽃잎에 오버랩 시키고 있다. ‘한 이레 만개한 꽃에 정신줄을 놓는다’ 시인의 절규에 숙연함을 느낀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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