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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26]'술 권하는 아내'

기사승인 2020.07.15  02: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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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술 권하는 아내
                                                      심 인 자

매실(梅實)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시선을 알아보고 열매 몇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약을 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촌로(村老)의 표정이 밉지 않다. 매끈하고 윤기가 흐르는 게 곱다. 이맘때면 매실을 산다. 술을 담기 위해서이다.
  남편은 술을 못한다. 아니 술에 약하다. 어떤 종류의 술도 두 잔이 주량이다. 서너 잔을 넘기면 얼굴이 벌겋게 되고 숨소리가 고르지 못하다. 그러다 더 버티기 어려우면 앉은자리에서 조용히 잠이 든다. 두어 시간 후에 깨어나면 속이 거북하고 두통에 시달려 괴로워한다. 그러다 보니 자주 술자리를 빠지게 되고 자연스레 술친구가 멀어졌다.     
  명절날 친정에 가도 마찬가지다. 술상이 벌어지고 얘기 속에 술잔도 바삐 오간다.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 남편도 처음에는 한두 잔 받아 마신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구석자리에 잠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깨어진다.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술 못하는 남편이 슬그머니 밉기까지 하다. 십 년이 넘게 처갓집을 드나들어도 나아진 것은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친정식구 모두가 남편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을 잘 못하는 남편이 은근히 불만스럽다. 이런 말을 하면 복에 겨운 소리라 하겠지만 가끔은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술 마시고 비틀거리며 실수하는 것을 봐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바가지를 긁고 싶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 평소 차분한 성격으로 빈틈이 없는데다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적은 여태 두세 번 될까. 어쩌다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얌전히 잠들어버리는 것이 끝이므로 허점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술’하면 아버지를 빼 놓을 수 없다. 기분 좋아서 한잔, 심심해서 한잔, 속상해서 한잔하다보면 어느 새 저녁이 되었다. 하루를 온통 술 마시기 위해 보내는 것처럼 늘 술을 끼고 계셨다. 영판 난 아버지를 빼 닮은 자식이었는지 그런 아버지가 싫지 않았다. 거나하게 취한 날은 집안이 떠나갈 듯 다섯 자식을 불러들였다. 아버지를 위해 따로 둔 먹 거리까지 내오게 하여 잔치를 열어주셨다. 술 드신 아버지 뒷바라지에 어머니가 힘드셨을 뿐 나는 좋았다. 한잔하신 힘을 빌어 자식들에게 쏟아 붓는 애정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술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없다. 거부반응도 느끼지 않는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남편은 사위로서 대접은 크게 못 받았을 것이다. 술 안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술을 전혀 못 마신다면 더 그럴 것이다. 생전의 아버진 남자가 술을 못하면 큰 사람이 못 된다 하셨다. 당신이 술을 좋아하셨으니 대작(對酌)할 친구가 필요했음이리라.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 제목처럼 술 마실 일이 예사 많은가. 남편도 동료나 친구들과 가끔은 술을 마셨으면 좋겠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나면 빈 잔이 되는 것처럼 힘들고 속상할 때 친구 혹은 동료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속을 털어 내면 후련하지 않을까.
  내가 아는 지인 중의 한사람은 가끔 남편을 분위기 있는 곳으로 불러내어서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술 한잔에 평소와는 달리 무뚝뚝하던 남편이 고민거리나 속내를 보이기도 하고 슬그머니 애정을 표시하더라는 것이다. 의견이 다를 때나 언성 높아질 일이 생기면 이 방법을 써서 해결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가끔은 술상을 마주하고 남편과 대화를 하고 싶다. 그래서 부족한 점이나 섭섭했던 속내를 내보이고 잘못된 점은 서로 반성하면서 더욱더 깊은 정을 나눴으면 좋겠다. 여느 부부들처럼 우리 부부도 가끔 다툰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때가 있어 혼자 눈물을 흘린 일도 더러 있다. 섭섭하기도 하고 미운 생각에 몇 날 며칠 입 다물고 눈길 한번 주지 않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속이 상하고 답답하다. 이럴 때 남편이 술을 한잔한다면 못이기는 척 안주를 장만해서 슬그머니 옆에 앉을 터인데. 술 못하는 남편 때문에 이 방법을 알고 있어도 소용없다. 그래서 ‘남편 주량 늘이기’라는 목표를 혼자 세웠다. 몇 종류의 술을 담아두고 저녁마다 밥상에 올려 한잔씩 하다보면 주량이 늘지 않고 배기겠는가.    
  매실로 술을 담았다. 약주를 즐기시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술 담그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어깨너머로 봐왔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유리병에 잘 우러난 술 빛깔을 감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 될 것이라고.
  야심한 밤에 안주를 장만하여 술상을 내왔다. 나의 정성에 웬만하면 한잔 받을만한데도 그이는 미동조차 않았다. 오히려 ‘혼자 많이 드시게’하며 내게 술을 가득 따라준다. 허무하게 나의 계획은 빗나가고, 약이 올라 마신 몇 잔의 술에 취해 나 혼자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뒤에도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술도 꾸준히 마시면 양이 늘어난다는데 남편은 시도조차 않는다. 나의 의도를 무 자르듯 단호하게 잘라버리니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술을 담는다. 매실알맹이를 깨끗하게 씻어 채에 받쳐 물기를 뺀다. 유리 항아리 안을 닦아낸 후 햇볕에 말려 소독해 둔다. 물기를 뺀 매실을 항아리에 넣고 술을 부은 다음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봉한다. 시간이 지나면 매실주가 되어 소화제 겸 반주(飯酒)로 쓰일 것이다. 매실주는 소화가 안 되거나 속이 답답하면 약 대신으로 조금씩 마신다.
  어렸을 때부터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한 끼가 있으면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한 모금씩 마셔왔기에 그때는 술이 아닌 약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작은 잔에 따라 단숨에 마신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보통 술꾼이 아니라며 놀린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남편보다는 내가 한두 잔 더 마시니 술꾼일 수도 있겠다.  
  해마다 술을 담그다보니 조그만 장식장이 술병으로 채워졌다. 술 담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마주 앉아 정겹게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는 그 순간까지.
  창밖을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오늘, 야심한 이 밤에 정성껏 마련한 술상을 놓고 주량 늘이기 시도를 또 한번 해볼까 한다.
  술 권하는 아내는 아마도 나 밖에 없을 듯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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