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문단 봄호에서 '숟가락 둘 젓가락 넷'으로 제23기 신인상 수상
제23기 국제문단 신인상 당선
숟가락 둘 젓가락 넷
아버지는 7남매 중에 6번째로 태어나시고, 어머님은 4남매 중 막내로 태 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남자형제 중 막내로 할아버지의 재산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여 작은 오빠와 어렵게 살면서 성장하셨고, 아버지 28세, 어머니 20세에 두 분이 만나 결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두 분은 숟가락 둘, 젓가락 넷으로 살림을 시작하시었고,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기로는 너희 아버지와는 ‘심봉사와 심청이가 만 난 격’이라고 하였습니다. ‘無’에서 신혼생활을 하였다는 뜻으로...
‘결혼하고 삼 일째가 되니까 쌀이 없어 물로 허기를 채웠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아버지는 내성적으로 차분하시고 말수가 별로 없으셨던 편이고, 반대로 어머니는 이 산을 들어서 저 산으로 옮기고 싶은 정도의 열성적인 성품이 셨습니다. 두 분은 상대적 성품으로 잘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조그마한 돛단배로 고기잡이를 하였고 어머니는 잡아온 생선 을 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약 2.5킬로미터 신작로 길을 걸어서 아양1구 (관송마을)에서 장승포읍 소재지까지 나가 팔았습니다.
후일 어머니 말씀에 자식을 낳고 산후 조리도 못하고 다음 날 생선 동이 를 머리에 이고 이곳저곳 다니시며 팔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도 음식을 만드시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 이 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후덕하신 분이셨습니다. 입담도 좋아서 남을 웃기는 유머가 다재다능했습니다.
어머니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동네 제사 기일, 생일, 쌀값 등 총기가 남다르셔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동네의 크고 작은 일들을 어머니께 자주 물으셨다 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조선 공사(현, 대우조선해양)가 들어오면서 1974년도에 이주를 하여 생업처럼 해오시던 당신의 고기잡이를 못하시고, 고등어 배 어부로 이직을 하게 되었으나 살림은 늘 쪼들린 생활을 할 때쯤, 어머니께선 관절에 무리가 와, 무릎에 물이 차도 치료를 받지 않으시고 일을 하러 가신 강인 한 성품이셨는데 자식들 5남매가 성장하면서 씀씀이가 늘어날 때는 당시 아버지의 벌이로는 이주민주택 융자금 갚기에도 매월 빠듯하여 육 고기 한 근을 사서 먹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공사장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1985년 제주도 성산포 18마일 해상에서 배가 파도에 좌초하면 서 31명 중에 4명을 구조하고, 아버지를 포함 27명이 배와 함께 수장되어 지금 35년의 세월이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샛바람만 불면 새벽잠을 떨치고 가까운 산에서 소나무 갈비를 이고 와서 아침밥을 지었습니다. 또한 남의 산을 빌려 조그마한 밭을 개간하고 일구어 채소를 심어 가꾸 어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늘 하셨던 말씀이 거제시 장승포동 일구에서 오구까지 길을 따라 걸으며 글을 풀어 놓고 녹음기에 녹음을 해도 글과 말이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모자란다고 하셨습니다.
힘이 들면 밭에 나가 외로이 먼저 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옛 노래로 마음을 다잡으시곤 하셨고 그때 늘 부르셨던 노래는 ‘한 많은 대동강’, ‘가슴 아 프게’ 등등 그 당시 유행가 였습니다.
어머니 나이 50에 홀로 되어 이곳저곳 몸이 다 망가지도록 자식들을 위하여 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숟가락 둘 젓가락 넷” 재산으로 시작하여 5남매 자식들의 재산을 조금 씩 불려 놓고 오두막집은 언제라도 아버지께서 오시면 쉽게 집을 찾게 하기 위하여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그대로 있습니다. 지금의 자식들에겐 크나큰 재산을 물려주시고 가셨습니다. 바로 그 재산은 ‘근면과 성실’입니다. 그 소중한 재산 중 신체로 치면 뼈는 아버지요, 살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께선 불행히 2014년도에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치료 중 영면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하고 훌륭하신 부모님 이셨습니다. 가난했기에 억척같은 삶이였고 그 시절 그 가난은 수치가 아닌 굳건한 삶의 정신을 물려주신 것입니다. 저희에게 가난은 자존심 문제가 아닌 도전정신과 신념을 더더욱 돈독하 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쓰던 글을 마치는 오늘은 아버지 기일입니다. 제가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할 때 사무실 과장님께서 급히 달려와 말을 머뭇거리며 아버지의 비보를 전할 땐, 그때 저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 습니다.
당시 바다엔 세찬바람과 집체만한 너울파도가 심하게 일렁이고 있었습 니다. 지금 부모님은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두 분 부모님 이 계셨기에 오늘날 저희 자식들이 사회에서 서로 나누며 살며 정신적으로 더욱 강인하게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제23기 국제문단 신인상 심사평 |
제23기 국제문단 신인상 당선자 프로필 및 당선소감 호는 自目/거제 출생/거제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신한기업(주)대표/거제시송정초 운영위원장/계간『국제문단』운문부신인상수상등단/[국제문단문인협회]회원/현)거제시농아인지부운영위원장/현)장승포농협감사/능포초,장승포초운영위원장역임/능포동5,9대주민자치위원장역임/능포동체육회장역임/거제시학교운영위원연합회장역임/2020년『국제문 단』산문부문(수필)신인상당선 수상소감 |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