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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⑪김영자-'긴 팔을 갖고 싶다

기사승인 2020.05.29  09: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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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자:인천출생/LS(주)미르상사대표/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 회원

                     「금요거제시조選
                     긴 팔을 갖고 싶다     

                               김 영 자

  비 오는 봄밤이면 긴 팔을 갖고 싶다
   아주 아주 긴 팔을 더 많이 갖고 싶다
     내 몸을 몇 번씩이나 휘감고도 남을 팔.

뒤로도 앞으로도 수차례 감겨져서
 따습다 뜨겁다가 하늘이 노래지면
        수십 길 우물 속에서 심호흡을 하고 싶다.

 아무도 풀지 못할 그 팔에 칭칭 감겨
뱀처럼 또아리 튼 태고의 원형감옥
      그 속에 틀어박힌 채 수인으로 살고 싶다.

갈라진 마른 혀에 신음이 넘쳐나고
        매듭 되어 감은 팔에 옴짝 달싹 못한 채로
        천년을 헤아리고 남을 깊은 잠을 자고 싶다.

 

시조 짓기의 과정
라. 초고(草稿) 쓰기

 제제가 정리되고 주제가 설정되면 시조 창작의 준비가 갖추어진 셈이다. 창작(創作)이란 없는 작품을 처음으로 짓는다는 뜻이다. 처음으로 짓는 만큼 남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슬쩍 베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
 하나의 건축물이 많은 자재들을 요소요소에 세우고 쌓아가듯이 시조의 창작에 있어서도 소재나 시어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엮어 나가며 짜 맞추어야 한다.
 시조를 창작하고 나선 다음 사항들을 점검해야 한다.
 첫째, 초장의 제1구가 독자의 주의를 끌만한가.
 시작이 절반이란 말이 있듯, 무슨 일이나 시작이 중요하다. 시조도 첫 구가 그 작품의 승패를 좌우한다. 첫 구에서 주목을 끌지 못하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다.
 둘째, 초장, 중장, 종장의 배치가 적절한가.
 자유시는 표현 내용의 성격이나 거기 담을 분량의 다소(多少)에 따라 자유자재로 짤 수 있겠으나 시조는 처음부터 초장 중장 종장의 틀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그 구성에 신경을 써야한다.
 셋째, 종장의 구조상 및 운율상 특징이 잘 지켜져 있는가.
 종장은 시조의 완결미를 이루는 중요한 뼈대이다. 종장에서의 깔끔한 마무리가 없으면 모두가 허사가 된다. 시조의 종장은 초장 중장에서 이끌어낸 시상을 확 뒤집는 반전(反轉)의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넷째, 연작시조의 경우 각 수와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짜여져  있는가.
 연작시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로 조화되고 전체의 작품이 피가 통하는 통일감이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검을 거쳐서 내용상 형태상 골격이 일단 짜여진 것을 ‘초고(草稿)’라 한다. 초고란 첫 원고란 뜻이니 질그릇 짓는 작업에 비유하자면 초벌구이와 같은 것이다. 초벌구이가 아직 그릇 구실을 할 수 없듯이 초고작으로는 아직 발표할 만한 작품이 되지 못한다.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서는 습작을 거듭하고, 풍부한 자료를 수집 정돈하는 습관을 기르고 자신만의 깨우침을 가져야 한다. 좀 더 나은 시조를 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체험을 축적하며 상상력을 높여야 함은 물론, 정서적 감각을 민감하게 쌓고 여러 가지 표현기법들을 익혀 두면서 표현력을 길러가야 한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긴 팔을 갖고 싶다〉는 김영자 시인의 작품으로 4수 연작이다.
 작품을 접하고 조금은 생경함을 느꼈다. 〈긴 팔을 갖고 싶다〉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몇 차례 읊어보다 무언가 사연이 있음직해서 시인에게 ‘시작노트’를 청했다. 시인은 이 작품이 지난날 시로 적은 것을 시조로 개작한 것이라며 멋쩍어 했다. 이틀이 지난 후 ‘시작노트’를 보내왔다. 내밀을 드러내 보이기가 두려웠기 때문에 많이 망설였지 싶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옮긴다. 어렵사리 시인의 허락을 얻었다.

 “잘 자라던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몸이 아프다 하였다.  검사결과 근육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잘 걷던 아이가 그 후 2학기엔 걸음을 멈췄다. 몸의 기능들이 하나하나 마비되더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누워서, 기대고 앉아 지내다 고3이 되던 해 봄에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마비가 진행되어 아침 눈뜨면 눈곱을 떼어주는 일을 시작으로 먹이고 씻기고 자면서 뒤척이는 것까지 저와 같은 방을 쓰며 아들은 의료기 침대에서 저는 1인용 침대에서 자며 한 몸같이 살았던 아들이었다.

 몸은 스스로 꼼짝 못하는 장애였지만 두뇌는 명석하고 이해력도 좋아서 중학교 1학년까지 학업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였다. 학교에 나가지 못해 재택수업을 받아야 했던 중학교 시절부터는 컴퓨터에 접속해 재치 있는 언변으로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익명의 많은 이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던 아이.

 당시 유행하던 온라인 게임에서도 랭킹 상위에 있던 아이라 온라인 친구가 많았다. 게임도 잘하고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고민상담도 잘 해주다 보니 정평도 자자 했구요. 나이를 밝히는 곳이 아니다보니 사람들은 아들의 나이도 모른 채 본인 삶의 애로사항과 에러가 생기는 컴퓨터의 문제점을 아들에게 상담을 청해오면 오랜 시간이 걸려서도 친절, 상세하고 자상하게 답변 글을 올리더군요. 그러다 시샘을 하던 학교친구 하나가, 고민을 상담해 주는 제 아들이 사실은 누워 지내고 학교도 못나가는 겨우 고등학생인 장애인이라고 온라인에 소문을 내고 다녀서 눈물로 고민상담 게시판을 정리하더니 몸도 마음도 급속도로 나빠지더군요. 본인 몸이 아픈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아이라 자존심이 많이 상해했습니다.병의 고통이 심해 밤새 끙끙 앓던 아이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제게 아이가 했던 말들은 지금도 자주 떠오릅니다.
 “괜찮아요. 엄마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아들이 떠난 그 후로 제 정신은 마비가 된 채로 몇 년을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를 몇 년 받아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들이 좋은 곳에서 고통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자위하며 견디다가도 비 오는 밤, 한 번씩 아들이 그리워지면 우울이 온몸에 고압전류로 흘러 들어와 제 정신 꼼짝 할 수 없이 혼자 눈보라치는 벌판에서 벌벌 떨며 서있기도 한다.

 아들을 보낸 해에 거제에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었다. 하루건너 이삼일씩 많은 비가 내렸던 2012년 봄, 밤새 불면으로 뒤척이며 긴 팔로 나를 칭칭 감아 안고 토닥이고 싶은 그런 밤을 써본 것이다.” ‘시작노트’를 읽고 나는 마음을 진정하느라 잠시 눈을 감았다. 좀 과장일지는 모르지만 감전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제 「긴 팔을 갖고 싶다」는 시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첫 수는 잠 못 이루는 / 비 오는 봄밤이면 긴 팔을 갖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 아주 아주 긴 팔을 더 많이 갖고 싶다/고 강조한다. 어떤 팔인가 / 내 몸을 몇 번씩이나 휘감고도 남을 팔./ 이다.

 둘째 수는 / 뒤로도 앞으로도 수차례 감겨져서/ 온몸이 따습다 뜨겁다가 하늘이 노래지면 / 수십 길 우물 속에서 심호흡을 하고 싶다./고 우짖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위로 노오래진 하늘만 보이는 수십 길 우물 속이다.

 셋째 수는 / 아무도 풀지 못할 그 팔에 칭칭 감겨 / 어쩌면 풀지 못하도록 꽁꽁 동여매었으리라 / 뱀처럼 또아리 튼 태고의 원형감옥 // 그 속에 틀어박힌 채 수인으로 살고 싶다./고 되뇌이고 있다. 아들 잃은 어미는 스스로 수인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넷째 수는 침도 말라버려 / 갈라진 마른 혀에 신음이 넘쳐나고 // 매듭 되어 감은 팔에 옴짝 달싹 못한 채로 / 깨어나지 말자고 다짐하며 / 천년을 헤아리고 남을 깊은 잠을 자고 싶다/로 종장을 마무리 했다.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유향(劉向)이라는 사람이 쓴 전국책(戰國策)에 상궁지조(傷弓之鳥)란 말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는 화살에 상처 입은 새이다. 편대를 지어 날으는 기러기 중 화살에 상처 입은 기러기는 시위 소리만 들어도 바로 떨어진다. 예전에 일어난 일에 놀라서 하찮은 일에도 매우 두려워하여 경계함을 일컫는 말이다. 상궁지조는 우리 속담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와 뜻이 통한다고 하나 놀람의 강도가 비할 바가 아니다.
 시인은 자식을 보낸 8년 세월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상궁지조와 같은 가슴이 와락 무너지는 일을 맞았지 싶다. 오늘은 코로나 19로 중지되었던 일부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 되었다.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는 시인의 가슴은 또 무너졌으리라. ‘시작노트’ 전문을 실으면서 행여 상처가 덧도지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웠으나 아품을 함께 하면 그 아품이 반으로 줄어든다기에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막연히 알고 있었던 우울증, 이러토록 심각한줄 몰랐다. 처연(凄然)한 기분에 잠기게 하는 〈긴 팔을 갖고 싶다〉에서 ‘긴 팔을 갖고 싶다’ ‘심호흡을 하고 싶다’ ‘수인으로 살고 싶다’ ‘깊은 잠을 자고 싶다’는 시인의 희원(希願)이 절규로 들림은 나만의 감상(感傷)일까. 4수 전편에 흐르는 아품에 크단한 연민을 느낀다. 가슴에 묻은 그 자식을 이제는 보내길 기대한다. 어려운 일인줄 알면서도 말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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