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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승철]'거제발전 공로자 신봉권(辛奉權) 난민대책위원장'

기사승인 2020.05.18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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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거제향토사연구가-"신봉권씨 업적 기리는 공적비를 포로수용소에 세우자"

 거제발전을 위해 일생을 몸 바쳐 오신 신봉권씨는 거제토박이 영산 신씨(辛氏 )상장궁공파(上將軍公派) 용산(龍山)문중 인물이었다. 가계를 살펴 보면 신락현(辛洛鉉)은 거제향교 전교(典敎)를 지낸 학자 집안이다. 신봉권씨는 신낙현과 옥금이씨의 외동아들로 1907년 10월 21일 신현읍 고현리 상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신동이라 할 만큼 머리가 좋았다. 거제보통학교(현 거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농업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그 당시의 신 문화인이다.

향토를 위해 공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다-'난민대책위원장 신봉권'
 경상남도 공무원을 시작해 남해, 의령, 고성, 통영, 양산 등지의 산업, 내무과장을 거쳐, 경상남도 관재과장을 했다. 관재과는 일본인이 남기고간 재산을 처분하는 업무였다.  6,25 전쟁으로 인해 그 업무가 없어지자 고향 거제로 돌아와서 향토 발전을 위해 일생을 몸 바쳐왔다. 당시의 거제는 통영군에 편입되어 있었고, 포로수용소와 피난민들로 인해서 행정의 힘은 미치지 못했다.

거제군 복군과  군청소재지 결정에 큰 공로
 거제의 행정이 통영군에 편입되어 있어서 거제를 통치하는데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포로수용소가 있었다는 구실로 거제군을 복군(復郡)해야 한다는 여론을 신봉권씨가 일어나게 하였고, 정부 요로 기관에 거제군  복군에 대한 진정서룰 냈다.
 
1952년 12월 14일자 대통령령 제271호로 거제군 설치법이 공포되었다. 거제군설치법이 공포되자 군청 위치 문제로 지역적 갈등이 생겼다. 서로 자기 지역이 타당하다는 진정서를 각계에 내었다. 장승포 지역과 거제면 지역에서 유리한 조건을 내걸고 서로 다투었다. 이 때 신봉권씨가 나서서 거제군청은 거제의 중심지인 고현에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중앙 요로에 직접 찾아가서, 고현에 유치 운동을 했다. 그러자 신봉권씨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하게 되었다.
 
1953년 1월 22일 대통령령 제737호로 거제군 일운면 고현리(현 신현읍)에 두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포로수용소가 철거 될 때까지 장승포에 임시 청사를 둔다는 법률이 공포되었고, 1956년 10월 30일 장승포에서 고현으로 거제군 청사를 이전 하게 되었다.

 소개난민(疏開難民) 복귀 대책위원장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던 신현읍 주민들은 포로와 피난민들 사이에서 물정모르고 살고 있다가 「돗드」준장 납치 사건으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삶의 터전을 잃었고, 피난 아닌 소개(疏開) 난민(難民)으로 쫒 겨 나서 생활의 어려움과 불안 속에 살게 되었다. 주민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집을 버리고 이웃마을로 떠나야 했다 이들은 남의 집 아랫방과 산 밑이나 바닷가에서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다.
 
이런 현실은 목불인견이었다. 행정은 통치 부재로 무질서 속에 온갖 유언비가 난무했고, 난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 졌다. 이때 행정에 경험이 있는 신 봉권씨가 앞장서서 난민대책복귀 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위원장이 되어 소개난민들을 복귀시키는 사업을 시작했다.

소개난민 정착과 구획정리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인하여 포로들은 석방되었고, 피난민들은 살 곳을 찾아 서울 부산 등지로 떠났다. 포로수용가 있었던 곳은 잡초만 무성하고 돌담과 콘크리트 벽, 가시철조망이 나뒹굴고 있었다. 소개민들이 옛 집과 토지를 찾고자 했으나 포로수용소의 잔해와 황폐화된 땅은 누구의 땅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당시 거제는 주민 10만 명, 피난민 20만 명, 포로 17만 6천 명이 살았던 곳으로, 포로수용소로 인해 폐허로 변한 고현지구를 복구 하는데 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처럼 중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삽과 괭이로 포로수용가 있었던 곳에, 시멘트 담을 헐어 없애고, 맨손으로 흙을 담아내어야 했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복구 사업을 해 냈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구획정리
 이때 소개난민의 복귀 대책을 위한, 소개난민대책위훤회를 연초에서 결성하여 위원장에 신봉권씨 상무 유상언씨 사무원 배영도씨가 맡았고, 마을별 대표 이장1명씩 24명과 주민대표 등 30명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신봉권 위원장과 유상언, 배영도씨는 중앙의 관계 요로에 여러 차례 찾아가서 복구에 대한 건의를 하였다. 당시의 나라형편은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어려웠다 그런데도 신 위원장의 노력으로 구획정리 사업비 1억2천만 원. 건물보상금 5천3백 만 원, 토지사용료 2백5십만 원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7년간에 걸쳐 복구 사업을 마쳤다. 당시의 금액으로서는 엄청난 액수였다
.

  대책위원들은 무질서한 소개민을 선도하고 정부에 건의하여 포로막사 880동과 재건주택 100동을 지원 받아 380세대 소개민의 주택 복구와 주변 주민들 주택에 사용했다.구획정리를 하면서 공공용지를 적지 적소에 마련하여 거제 발전의 바탕이 되게 하였다.
 
고현시가지 도로와 양정 수월 장평도로를 비롯하여 거제군청부지 (현 신현읍 사무소) 신현면 사무소 부지(현 해양개발공사) 교육청, 삼룡초등학교, 계룡초등학교, 수월 초등학교부지, 옛 보건소 부지, 옛 법원 등기소 부지, 선거관리소 부지, 고현시장부지, 옛 농민회관 부지, 옛 농촌지도소 부지 우체국 등 공공 건물로 사용 할 수 있는 부지를  무상으로 적지 적소에 마련하였다.
 
오늘날에는 그 땅이 거제시의 중심지이고 황금 땅이 되었다. 지역발전의 먼 안목을 내다보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상남도 관재국장과 20여년의 공직생활이 바탕이 되었던, 신봉권 위원장의 탁월한 지도력과 향토사랑의 결과 였다.


 이 모두가 선견지명 한 신봉권씨가 이루어 놓은 큰 업적이었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한반도 곳곳에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 그 중에서 거제지역에서만 보상을 받게 된 것도 신 봉권씨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 였다. 이 일에 도움을 주신 분은 서순영 전 국회의원 이채오 전국회의원과 서울거주 향인들이다. 그는 지역발전의 선구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신봉권 씨는 육영사업을 비롯하여 문화 예술 사업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고현에 있는 거제공업고등학교 신축 부지에 신봉권씨, 김봉태씨 소유 토지를 기증하였고. 1974년 고등학교부지 내에 있던 고현중학교를 현 위치로 옮길 때 신봉권씨가 건위 하여, 옥광오씨 소유 임야 6천 평이 기증되어 운동장과 학교 부지를 만들었다. 이런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가 꼭 필요하다.

 현 거제시청 자리를 놓고, 서문 공설운동장과, 매립지와 현 위치를 두고 지역적 갈등으로 21대 이근식 거제군수로부터, 하일청군수, 백승두군수에 이르기 까지 결정을 못하고 있던 것을 24대 김한배군수가 부임하자. 신봉권씨와 김해정씨, 김재윤 교수가 김 군수에게 지역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현 위치의 타당성을 건의하였다. 김 군수의 결단으로 옛 거제 동헌이 있었던 고현성내 현 위치에 새 군청을 지어서 옮기게 되었다.
 
 윤철근, 고민숙, 신용만씨를 초빙하여 1970년 초에 거제에 시조창을 보급하였고, 이어서 통영 지철훈 궁도 사범을 초빙하여 계룡정 궁도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마산의 가야금 명인 조순자 여사를 초빙하여 가야금을 보급하기도 했고, 포로수용소 복원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포로수용소 복원 선구자
 1978년 6월 첫 토요일날 고현중학교 진입로 공사로 포로수용소 경비 막사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 이승철(거제군 공보실 문화재 담당)이 현장에 나가서 포로수용소 막사를 보존하려고 하다가 폭행을 당했다. 그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공사는 중단되었고, 1983년 8월 6일 문화재 담당자 이승철은 포로수용소와 경비중대 막사 5동을 지방문화재 제99호로 지정했다.
 
 이때부터 포로수용소 유적관 정비계획은 시작되어, 1989년 김한배 군수가, 신봉권, 김해정, 김재윤 교수의 건의를 받아 경남대학교 부설 공업기술연구소 하정옥 소장과 김효일 교수가 설계를 하였고, 이때부터 임시 유적관 50평이 건립되었다.포로수용소 복원으로 영산신씨 신봉권씨 문중제실과 문중 땅을 기증하였고, 신덕생 씨 전답을 공시지가로 기증받아 2천 평의 부지를 만들었다.

  포로수용소 복원 토지가 확보되어 1992년 10월 양정식 군수 때 설계를 시작하였다. 이때 문화재 관리국 거제출신 이한홍씨의 도움이 컸다. 이때 국고 지원금 7억을 받아서 1994년 9월에  포로수용소 기본설계 용역을 하여, 1995년 11월 조상도 민선 시장 때 포로수용소 기본계획을 승인을 받아 1997년2월 20일 조상도 시장 때 착공식을 하였다.

 거제의 미래를 알아보는 선견지명
 신봉권씨는 1980년 말경부터 2000년대 거제의 발전을 위한 구상을 정부 관계요로에 건의 하였다. 거가대교 건설과 한일 해저터널과 국제고속도로 개설, 국제공항건설, 거제도 사통오달의 터널 개통(문동터널, 명진 터널) 국제해수욕장 개설, 거제종합대학 설립, 해상관광지 조성 등으로 거제직할시로 발전시킬 거제의 미래 청사진을 정부와 언론기관에 제출하였다.
 
 그 당시로서는 꿈과 같은 일이었으나 일부는 현실로 실현되고 있다. 91세로 타계를 할 때 까지 거제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해 왔다. 고난의 역경을 감내하면서 이루어 놓은 포로수용소 유적관과 그 어려운 시기에 포로수용소로 인해 쫒겨나서 살았던 주민들의 복귀와 거제군청을 비롯한 공공시절 학보, 포로들이 만들다 중단한 양정 저수지를  만들었고, 거제의 전통문화와 민속을 보존하게 한 난민대책위원장인 신봉권씨다.

그를 비롯한 그때 그 시절의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거제를  위해  어려운 시기에 만난을 극복하여 이루어 놓은 난민대책위원회의 노고와 그때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하여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매년 추모 행사를 해야 한다. 당시 같이 협력한 유상언 배영도씨 제익근. 양정식. 조상도.씨 등의 업적도 함께 기리는 비석이 건립되어 당시의 공훈을 알게 해야만 마땅할 것이다. 당시에는 지역언론도, 시민단체도 존재하지 않아 깨어있는 정신으로 거제찾기를 진력하지도 못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거제시민이 과거를 모르는 시민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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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동 이·통장협, ‘신봉권 선생 공적비 건립 요구’
 기자명 김창기 기자 | 입력 2014.11.21 11:17|
 구획사업추진…군청 등 관공서 부지확보 기여

▲ 故 도은 신봉권 선생

고현동 동장협의회(회장 김재언)는 해방이후 경남도 관재과장을 역임, 거제군 복군을 추진하는 등 현재의 거제시 발전의 숨은 공로자로 존경받고 있는 ‘고(古) 도은 신봉권 선생의 공적비’를 세워 줄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최근 거제시에 제출했다.

고현동 동장협측은 건의문을 통해 “고현동 출신으로 10여 년 전 작고한 신봉권 선생은 6·25 후 소개난민 복구대책위원장을 맡아 군의 중심지인 신현지역에 관공서를 유치하기 위해 구획정리 사업을 추진, 군청(현 고현동 사무소), 우체국, 선관위, 교육청, 보건소, 삼룡초, 농민회관, 고현종합시장 부지 등을 구획정리사업자로부터 할애 받아 체계적인 건립기반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협의회측은 “신봉권 선생은 거제군청 유치를 비롯해 거가대교 추진발의를 각계에 건의하는 등 거제지역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89년 제1회 거제군민상을 수상했다”며 “오늘날 우리 거제탄생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한 도은 신봉권 선생의 공적비 건립이 시급하다”고 건의했다.

고현동 통장협의회측은 공적비 건립에 따른 예산이 확보되면 위치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고현동 동장 협의회 김재언 회장은 “타 시·군에서는 고장을 빛낸 인물들의 공적비를 한 곳에 세워 시신군민들은 물론 2세들의 고향 사랑운동에도 기여토록 하고 있다”며 “우리시도 현재 고현매립지에 방치되고 있는 무원 김기호 선생의 공적비, 사곡삼거리에 있는 양달석 화백 공적비 등 거제를 빛낸 분들의 공적비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창기 기자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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