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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기섭]'세계를 제패한 한국조선업①'

기사승인 2020.01.11  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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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섭/러시아 프리마미디어 한국특파원(ajr328@naver.com)/전 월간거제 발행인

[기획/특집]세계를 제패한 한국조선업① 
한국 조선 산업을 일으킨 ‘정주영 신화’
러시아 프리마미디어 한국 특파원 박기섭 기자 (ajr328@naver.com) 

 

정주영, 500원 지폐로 단판승부 세계적 규모 조선소 설립
세계 조선산업은 한국. 중국. 일본이 80%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은 지난 2000년을 전후해서 세계조선시장 석권을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한경쟁을 벌여왔다. 중국과 일본은 강력한 정부지원책으로, 한국은 세계 1위~3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자율경쟁을 통해 판을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세계조선시장은 한국으로 기울더니 올해 들어서는 그 중심추가 더욱 기울어지고 있다. 세계조선시장은 한국에게 고부가가치선박인 대형컨테이너선. LNG/LPG선. 해양플랜트등을, 중국. 일본에게는 저가선박인 벌크선. 소형컨테이너선등을 발주하고 있다. 세계조선시장의 크고 값비싼 선박은 한국 조선사가 거의 전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계조선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의 조선업 경쟁력을 100으로 볼 때 일본은 90, 중국은 80정도이다. 기술격차의 경우 고부가 가치선박인 LNG/LPG선은 7.0년, 해양플랜트는 8.3년을 한국이 앞서 있다. 벌크선, 소형 컨테이너선등 저부가 가치 선박 건조경쟁력도 한국이 2~3년 앞서 있다. 한국은 △최다 건조경험 △설계.노동인력의 우수 △R&D 및 생산능력이 중국과 일본보다 탁월하다. 중국이 전폭적인 조선산업 지원정책으로, 일본이 해운. 조선 상생구조, 가격경쟁력 우수로 도전 해왔지만 한국의 질 높은 조선건조 능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 중국의 신조 LNG선이 호주해상에서 고장이 나는 바람에 세계 LNG선 신조 발주는 거의 전부 한국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조선업 시장은 말한다. “중국은 못 믿겠다. 좀 비싸더라도 한국에서 만들자.”라고...

한국 조선업의 성공스토리는 흥미로우면서 극적이다. 1970년 초 어느 날 밤 한국 대통령관저 청와대 뒤뜰 탁자에서 박정희 대통령과현대건설(현대중공업의모기업) 정주영회장이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박정희가 말했다. “임자, 조선소를 빨리 만들어 주시오. 어렵겠지만...” 정주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얼마 전 삼성 이병철 회장이 정부의 요청을 거절했던 중공업 육성 프로젝트였다. 잘못되면 현대건설이 뿌리 채 뽑혀 나갈 위험성이 있는 사업이었다. 사실 위험성으로 치면 성공확률 30%도 안 되는 도박 이었다. 침묵이 계속 흐르자 박정희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임자는 불굴의 투사가 아니오?” 박정희는 초조했다. 곧 포항제철이 완공되면 포항제철에서 생산되는 철을 대량 소비할 중공업 산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말없이 막걸리 잔만 기울이고 있는 박정희의 이마에 깊은 주름을 본 정주영은 결심했다. “철판으로 만든 탱크를 바다에 띄우고 동력으로 달리는 게 배지. 뭐 별거야!.” 정주영은 결의에 찬 얼굴로 청와대를 나왔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1년, 정주영은 런던으로 날라 갔다. 조선소 건설의 승패는외자를 유치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정주영은 영국 최대 은행 버클레이 은행과 차관도입을 협의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의 능력을 믿을 수 없다면서 거절 당했다. 한국에서는 “현대가 조선사업에 성공하면 손가락에 불을 켜고 하늘로 올라 가겠다“라는 비아냥이 들려왔다. 정주영의 오기가 발동했다. 수소문 끝에 선박 컨설턴트 회사 A&P 애플도어 찰스 롱바톰 회장을 어렵사리 만났다. 버클레이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A&P 애플도어 회장의 추천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정주영의 손에는 조선소건설 예정부지인 울산시 미포만 사진이 포함된 엉성한 계획서뿐이었다. 롱바톰 회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현대건설의 능력도 안 되고 배를 맡길 사람도 없지 않소?”... “한국정부가 보증을 서도 안 됩니까?”... “한국정부도 그 많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걸로 알고 있소” A&P 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은 단호했다.

일 년 동안 미국, 일본을 돌아다니며 냉대를 받아왔던 정주영은 마지막으로 이판 사판 오기가 발동했다. 정주영은 지갑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탁자에 펴놓으며 당당한 자세로 말했다. “잘 보시오. 한국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이오. 이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오. 당신들 영국보다 300년이 빠르오.” 정주영은 롱바톰을 물고 늘어졌다. 꽤 오랫동안 정주영의 설명이 이어졌다. 롱바톰회장을 한국으로 데려가 현대건설 현장을 보여주면서까지 끈질기게 설득했다. 롱바톰은 정주영의 열정을 보고 마음을 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정주영에게 롱바톰이 말했다.“당신은 당신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오. 거북선도 대단하지만 당신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A&P 애플도어 회장의 추천서를 받은 정주영은 그리스 선박왕 오아시스의 처남 리바노스를 찾아갔다. 은행의 차관 승인을 위해서는 선박 수주 계약서는 필수 조건이었다. 정주영의 배짱과 사람 됨됨이에 매료된 리바노스는 26만톤 대형유조선 2척을 주문했다. 한국조선업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대형유조선 수주 계약서를 손에 쥔 정주영은 영국수출신용보증국(ECDB)으로 달려가 차관승인을 받고 곧바로 귀국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청와대 대문 앞까지 달려 나와 정주영을 반겼다. 지도를 펴놓고 볼펜으로 본인의 구상을 설명하는 그를 보며 박정희는 미소를 띠며 비서들에게 “정회장이 그리는 대로 공장을 짓게 해주고 정부지원은 무엇이든지 아끼지 마라.”고 지시했다.

  한국의 창조정신,도전정신의 대명사 정주영의 “해봤어?”
조선소 건설작업은 험난했다. 조선소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기일 내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와 약속한 대형유조선을 건조해야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주영 만의 역발상이 발동했다. 조선소와 배를 동시에 짓는 것이었다. “완성된 조선소에 선박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이 있느냐!”면서 몰아붙였다. 반대하는 직원들에게는 “해봤어?”라는 말로 어르고 달래고 재촉했다. 이때 내뱉은 정주영의 “해봤어?”라는 말은 오늘날 한국인들의 창조정신, 도전정신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정주영은 조선소 건설과 선박건조를 병행했다. 제일 먼저 스웨덴에서 선박설계사들을 불러들였다. 일본으로부터 고급 조선공들을 초청했다. 한국내에 있는 조선 경험자들을 있는 대로 끌어 모으는 한편 공고생들을 대상으로 신규인원을 충원해 나갔다. 배 만들 공장이 없자 모래사장을 파내고 그곳에서 선박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현대건설 거의 모든 직원들이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일터에서 근무했다. 숙소에 돌아와 구두끈도 못 푼 채 잠을 자며 일해야 했다. 공장도 없고 도크도 없이 모래구덩이 속에서 배를 만들고, 동시에 방파제를 쌓고 조선소를 건설해나갔다.

1972년 3월 마침내 현대조선이 태동했다. 한국 최초로 26만톤 초대형 유조선도 만들었다. 선주 리바노스 회장은 정주영에게“지금까지 내가 본 배 가운데 가장 잘 만들어진 배”라고 극찬 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헬기로 날아가 ‘조선입국’이라는 휘호를 써 현대조선소 정문에 내걸었다. 한국 조선업의 세계 도전을 알리는 순간이었다.이후 2년 3개월 후인 1974년 6월, 건조능력 70만톤, 부지 60만평, 70만톤 드라이도크 2기를 갖춘 세계적 규모의 조선소가 탄생했다.

세계적 규모의 대형조선소를 건설한 현대조선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긴가 민가 하던 세계 조선 시장은 정주영이 그리스 초대형유조선을 만들어 내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 조선업을 주도하던 일본과 유럽 조선소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한 몫 했다. 정주영의 현대조선은 순식간에 수 만 명의 사람들을 고용했고, 전기,전자,철강,기계,화학 등 후방산업에 수십 만 명의 고용 효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곧바로 위기가 닥쳐왔다. 1973년 중동 오일쇼크 때문이었다. 유조선을 만들어 내던 현대조선에게 직격탄이었다. 만들어 논 배마저 선주들이 인수를 포기했다. 울산 앞바다에 대형유조선 3척이 갈 곳이 없어 그냥 떠있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정주영의 역발상이 발휘된다. “배를 가져가지 않으면 선박회사를 만들면 될 것 아니냐?” 정주영은 초대형 유조선 3척으로 아세아상선이라는 해운회사를 설립하면서 최초의 위기를 벗어난다.

한국이 수주량 기준으로 조선업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은 1993년 이었다. 실질로 세계 조선시장을 석권한 것은 1999년부터 이다. 하지만 현대 조선은 이미 1983년에 세계1위를 차지했다. 일본 언론은 2년후 에야 이를 인정하고 1985년 현대조선을조선부문 세계 1위 기업으로 발표했다. 첫 선박 건조식을 가진지 불과 10년만에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었다. 이는 1973년과 1978년 두 번의 오일쇼크 위기를 이겨내고 이뤄낸 성과라서 세계 조선업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대조선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초대형 유조선외 다목적화물선 벌크선, 목재운반선 등으로 선종을 다변화 했다. 1975년에는 수리조선소인 현대 미포조선소를 설립하는가 하면 엔진 생산을 위한 엔진 사업본부를 발족시키는 등 공격적 경영으로 세계조선시장에 도전해 나갔다. 현대조선 태동 40년인 2013년, 현대조선(현대중공업으로 명칭 변경) 도크에서는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대형선박이 바다를 가르며 나갔다. 현대조선 직원들은 “배를 찍어낸다.”고 했다. 당시 세계선박의 절반이 ‘메이드인 코리아’ 였고, 20%이상이 현대조선이 만든 선박이었다. 현대조선이 만들어 내는 선박의 주요 부품인 선박 엔진 점유율도 45%에 달했다. 현대조선은 1983년 세계 1위를 차지한 이래 46년동안 단 한번도 정상의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

중국조선업의 결정적 실수, 세계 조선시장 ‘한국 쏠림현상’

한국 조선업은 최근 중국 조선산업의 거품 때문에 잠시 주춤 거렸다. 그러나 세계 제1위 조선소 현대중공업, 세계2위 대우조선해양, 세계3위 삼성중공업은 묵묵히 세계 조선시장을 이끌어 왔다. 초 과잉 설비투자로 무지막지하게 도전하는 중국 조선업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중국 저가수주 공세와 비교하는 선주들에게 고급 브랜드로 대응했다. 길이 200m, 높이 40m에 달하는 대형선박은 한국조선 기술이 아니면 세계 어느 곳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다. 선박엔진 또한 세계최고 수준이었다. LNG선등 고부가 가치 선박건조는 한국조선업이 월등했다. 어디 이뿐인가 선박설계에 있어서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또한 한국 조선설계 인프라의 간접도움을 받고 있다. 노동숙련도는 중국의 2.5배를 능가했다. 중국 조선인력 2-3명이 붙어야 한국 조선인력 1명을 감당해낸다. 이처럼 중국의 선박수주 저가공세는 낙후된 조선기술력과 인적자원 때문에 한국을 추월 할 수 없었다.

10여년을 관망하던 세계조선시장이 이제 확실히 한국 쪽으로 쏠리고 있다.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하던 중국 조선업이 제풀에 주저앉고 있다. 중국조선업은 과잉 설비 투자로 경쟁력을 상실해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자국내 조선소의 75%가 단 한척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

박기섭기자

 

다. 게다가 기술력에 있어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바람에 세계 선박 시장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지난해 6월 호주만에서 발생한 중국산 LNG선의 고장이 그것이다. 중국 국영조선업체 후동 중화조선이 만든 배였다.

‘싼 게 비지떡이다.’라는 경험을 체득한 선주들의 발걸음이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

해 전 세계 발주 LNG선박 70척중 한국 조선사가 94%인 66척을 수주했다. 러시아는 이미 2014년에 15척의 LNG선박을 한국 ‘대우조선 해양‘에 발주했다. 카타르의 경우 올초 60척 LNG선 발주를 위해 한국 조선사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심지어 중국 국영석유기업도 50척 LNG선 발주를 앞두고 한국 조선사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한국의 세계조선시장 장기 석권이 가시화 되고 있다.

참고문헌
현대중공업 사보
강대권.이상우(2016), 한국조선 산업의 역사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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