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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⑫ 봄의 향기

기사승인 2019.12.05  1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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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봄의 향기
 
                                                                    
                                                                                               윤    석    희

“매화가 한창이라는 데 뭐하는 거야”
후배가 봄맞이를 가자고 조른다. 아직 바람은 맵지만 봄은 성큼 다가섰나보다. 상가 쇼윈도에 분홍 꽃 화분들이 나앉고 여인들의 옷차림이 산듯해졌다. 장마당 할머니의 좌판에도 달래 냉이 쑥 등 계절이 풍성하다.

과연 봄이 왔는지 궁금하다. 들판에 나간다. 계절이 왔다 가더라도 이곳에 나와 보지 않은 해는 내 가슴속의 봄은 시작되지 않는다. 오래 전 땅 밑에서부터 준비된 봄이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지가 기지개 켜며 깨어난다. 동면하던 흙도 몸을 풀었나 보다. 포근포근하다. 양지쪽에선 매화가 흐드러지고 코끝에 스치는 새 풀 향이 상큼하다. 언 땅을 힘차게 밀어 젖히고 고개를 내민 풀들이 볕에 눈이 부신 듯 수줍다. 채 가시지 않은 찬 기운에 여린 속살이 다칠까 안쓰럽지만 봄 동산에 봄기운은 완연하다.

눈여겨보는 이, 보살펴 주는 이 없이도 풀들은 이름 없는 삶을 소신껏 꾸린다. 새 생명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준비한다. 또 한해살이를 기쁨으로 시작하고 있다.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뙤약볕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의연하게 생명의 환희를 노래할 뿐이다.

내게 처해있는 현실이 갑갑하다고 주저 안자 동면하고 싶었던 나약함을 깨우쳐준다. 여름의 치열함도 가을날의 처연함도 또 겨울의 고독도 외면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다가올 계절을 두려워 말고 어서 털고 일어서라고 재촉한다.

심호흡을 한다. 깊숙이 대지의 정기를 마신다. 새 풀의 기운이 팽팽하게 전이 된다. 피가 도는 듯 근질근질하다. 봄의 정령이 한판 춤을 춘다. 내 몸이 다시 살아난다.

봉오리 진 매화꽃을 한웅큼 딴다. 움이 돋은 쑥을 뜯으며 콧노래가 절로 난다. 달래는 알뿌리도 제법 실하다. 후배가 흙 묻은 냉이 한줌을 내 코에 들이댄다.
 “언니야 냄새 참 좋다. 그지.”
눈을 감어 버린다. 흠뻑 향기에 취한다. 봄 처녀가 된다. 바구니 가득 신의 축복을 담는다. 비로소 올 한해를 살아낼 희망과 에너지를 들판에서 얻는다.

가까운 이들이 내 집을 찾아오면 찻잔에 매화 꽃잎을 띄우리라. 혀끝에 감도는 춘향을 기억할거다. 이들도 나처럼 소망으로 한해를 살아내겠지. 된장 풀어 쑥국도 끓이자. 겨우내 움츠렸던 남편의 몸도 깨워야지. 달래장도 만들어야겠구나. 흙의 정기 탄탄한 알뿌리가 힘을 심어 줄 거다. 파릇하게 냉이를 무쳐야지. 시들어 가는 내 몸도 새 싹인 양 다시 태어 날것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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