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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⑤'잊어지지 않는 기억 속으로'

기사승인 2019.08.25  19: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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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빕평작가상수상

⑤잊어지지 않는 기억 속으로
                     
                                                  심 인 자    

 불자동차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집 앞에 멈춰 섰다. 불이 났다는 것이다. 식구들이 집안에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온몸이 섬뜩해졌다. 있는 힘을 다하여 아이들을 불렀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천 근(千斤)의  바위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 손가락 하나조차도 꼼지락거릴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꿈이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을 꾼 것이다. 흥건히 젖은 이마를 훔칠 사이도 없이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베란다의 유리문을 열자 요란스러움은 더하다.
  불이 난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두어 대의 불자동차가 지나가고 그 뒤를 119구급차가 다급한 듯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려간다.
  밖은 아직도 어둡다. 싸늘한 냉기가 소리 없이 유리문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얇은 옷자락을 휘감는다. 습기를 걷어 가는 대신 시베리아 벌판에 세워둔 것처럼 나를 추위에 떨게 한다.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얼른 문을 닫지 못한다. 꿈속에서의 기억이 너무 생생했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큰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얼마 전에도 사고가 있었다. 어느 아파트에서 가스가 폭발한 것이다. 굉음과 함께 사람들이 다치고 이웃집이 크게 부셔졌다. 도로변까지 유리파편이 튀었고 그 아파트는 물론 주변의 집들도 심하게 흔들려 무척 놀랐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픈 것은 만삭의 젊은 새댁이 그 충격으로 유산을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이 착잡해온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큰아이가 열 두 살이니 그 전의 일이다. 첫아이를 가져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낮에 잠깐 눈을 붙이고 있던 중 사이렌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창문을 열어보니 길 건너 앞집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었지만 이미 절반도 넘게 타버린 상태였다.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구경 반 걱정 반’하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빨리 가스통을 치우지 않으면 폭발한다고 소리쳤다.
  순간 나의 뇌리에는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길이 번지고 건물 조각들이 날아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내용이다. 이층 계단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로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구 달렸다. 집으로부터 한 치라도 더 멀어져야했다. 치마가 발목을 자꾸 휘감아 넘어지려 하자 양손으로 무릎에까지 걷어 부치고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숨이 턱까지 차서 더 이상은 달릴 수가 없었다. 주저앉았다. 아니 반쯤 누워버렸다. 자신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꼼짝 않고 있었다. 그렇게 있는 것이 덜 고통스러웠다. 그대로 있다가 무심코 발을 쳐다보았다. 신발이 없는 거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끄러웠다. 이제 어쩌나, 어떻게 집까지 갈까 그것만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나치는 사람을 불러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모습이 남들에게 결코 평범하게 보일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공중전화도 보이지 않았다. 있다하더라도 내게는 동전 한 개조차 없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길로 앓아누웠다. 며칠 동안 밤낮으로 뱃속의 아이가 심하게 발길질을 했다. 놀랐으니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지만 편하지가 않았다. 배가 딴딴해지면 아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 후 딸아이를 출산했는데 경기를 하는 통에 한동안 고생을 했다.
  불이 난 집은 흉가로 변해있었다. 위층엔 젊은 새댁부부가 세 들어 살았는데 마침 외출 중이어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아래층의 주인할머니가 빨래를 올려놓은 채 일을 나가는 바람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린 세간들을 치우면서 한평생 모은 재산이었다며 할머니는 눈물을 훔쳐냈다. 한 순간의 실수가 엄청난 재난을 가져온 것이다.
  나도 가끔 실수를 한다. 타는 냄새에 놀라 부엌으로 가보면 찌개가 숯이 되어 눌어붙어 있다. 또, 외출에서 돌아오면 텔레비전이 켜진 채로 나를 맞기도 한다. 심지어는 현관문을 잠그지도 않고 열쇠만 들고 나갈 때도 있다. 시간에 쫓기다보면 더한 것 같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걱정이 앞선다. 가스레인지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나오지는 않았는지. 현관문은 제대로 단속을 하고 나왔는지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종내에는 이웃집에 전화를 하여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현관문에 가스 잠금, 소등(消燈), 문단속이라고 써 놓았다. 효과가 있었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나오니 불안감을 씻을 수 있었다. 이제는 이웃집에 전화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다. 나름대로 생각해 낸 방법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놓은 시간에는 아예 부엌을 떠나지 않는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보면 여러 일들을 한번에 하려한다. 빨래를 삶으며 청소를 하고, 전화를 받기도 한다. 일이 겹쳐지면 어느 것 하나는 잊게 된다. 오랜만에 여고동창 전화라도 받으면 얘기는 끝이 없다. 가스레인지에 무가를 올려놓았는지, 청소하는 중에 전화를 받았는지도 까맣게 잊는다.
  건망증이라며 자기합리화 시키지 말아야한다. 핑계일 뿐이다. 늘 조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시작한 일은 꼭 끝을 맺고 다음 일을 시작하는 것도 뜻밖의 사고를 막는 방법의 하나라 생각한다. 매사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습관을 기르면 재난을 방지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새벽 여섯 시다. 다시 잠을 청하기엔 늦은 시간이다. 조금 있으면 어둠의 그림자가 밝은 빛에 물러날 것이다. 기왕 잠을 깼으니 오늘은 마음먹고 아침 등산을 해볼까한다. 소란스러움에 빼앗긴 잠을 보충하는 대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조심스럽게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간밤의 꿈은 나에게 정상일침(頂上一鍼)이 될 것이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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