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年前 日本 文藝春秋誌의 名論文 紹介'를 읽고 '거제시를 바라보다'
1975년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한 편의 논문이 실렸다는데 '일본의 자살(自殺)'이란 의미심장한 제목 아래 일군(一群)의 지식인 그룹이 공동 집필한 문건이었다며 한 지인 독자가 보내온 글을 읽고 현실의 거제시를 크로즈업 해 봤다.
이 글의 주요 요지는 동서고금 제(諸) 문명을 분석한 결과 모든 국가나 도시가 외적(外敵) 아닌 내부 요인 때문에 스스로 붕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적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찾아낸 '국가나 도시 자살'의 공통 요인은 이기주의와 포퓰리즘(대중영합)이었다.
시민이 좁은 이익만 추종하고 지배 엘리트가 대중에 영합 할 때 그 나라나 도시는 쇠망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잊혔던 이 논문은 몇 년 전 아사히신문이 인용하면서 다시 유명해 졌다.이 논문은 로마 제국의 쇠락 원인을 '빵과 서커스'로 요약했다. 로마가 번영을 구가하면서 로마 시민은 책임과 의무를 잊은 '도덕적 유민(遊民)'으로 변질됐다.
그들은 대지주와 정치인에게 몰려가 '빵'을 요구했고, 정치인들은 환심을 사려고 공짜로 빵을 주었다. 무료 빵을 보장받아 시간이 남아도는 시민들이 무료해 하자 지배층은 '서커스'까지 제공했다. 기원후 1세기 클라디우스 황제 시대 콜로세움(원형 경기장)에선 격투기 같은 구경거리가 1년에 93회나 열렸다. 그것이 날로 늘어나 4세기 무렵엔 무려 175일간 서커스가 벌어지는 상황이 됐다.
대중이 권리만 주장하고 엘리트가 대중의 비위를 맞추려 할 때 그 사회는 자살 코스로 접어든다. 로마는 활력없는 '복지국가' 와 태만한' 레저사회'로 변질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됐다. 그것은 로마만의 일은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출현했던 모든 국가와 문명이 자체 모순 때문에 스스로 몰락했다.
한 국가나 사회가 기개를 잃고 자체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자살로 치닫는다. 빵은 무상복지, 서커스는 포퓰리즘의 상징이다. 대한민국의 상황과 거제시의 상황을 비교해 보자. 지금 우리의 문제는 눈앞의 이익만 취하려 하는 근시안적(近視眼的) 이기주의(利己主義) 때문은 아닐까?
증세(增稅)를 거부하면서 복지를 원하고, 다가올 재정 파탄엔 눈감은 채 당장의 몫을 더 달라고 한다면 어떤가? 20세기 대한민국의 기적을 낳은 것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인내하는 절제심과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거제시를 부강시킨 것은 조선산업을 위해 땀흘린 근로자들의 눈물겨운 노동의 댓가였다. 일부 노조의 파행이나 부정적인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조선소 경영진의 부패와 함께 원인이 된 점도 부정 못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거제시는 조선산업의 부흥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엔 미래는 없고 현재만 있다. 미래를 준비하며 국가와 거제시의 장기발전 전략을 짜야 할 정치관료 엘리트들은 인기에만 영합하며, 문제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지방정치권도 중앙정치권의 폐습을 그대로 따른다. 결국 파기됐지만 공무원 연금 개혁을 둘러싼 여야 합의는 '빵과 서커스'의 전형이었다. 고치는 시늉만 하고 공무원 연금 파산의 구조적 원인은 손도 대지 않았다. 거제시의 공직 사회는 어떤가? 지난 시절의 일들은 나몰라하는 돈이 얼마인가? 아직도 설익은 남북교류를 거제시가 논할 시기일까?
불가능한게 뻔히 보이는 일들도 약속까지 하면서 포퓰리즘의 극치를 달린다. 야당은 국익 대신 공무원 집단 편을 들었고, 여당은 야합했다. 야당은 공무원 연금으로 모자라 국민 연금까지 포퓰리즘의 난장판으로 끌어들였고 여당도 야합했다. 여도 야도 눈앞의 현재만 달콤하게 속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정치 서커스'에 열 올린 결과다. 과거의 노력에 의해 당연히 배분될 보통교부세를 자신의 공과로 앵무새처럼 시민들을 현혹하는 표퓰리즘을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진정 거제시는 어떤가? 조선경기의 불황 속에 대우조선매각이라는 엄청난 난국에서도 뒷북만쳤다. 지난날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촌음도 아까울 지경일텐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작은 행사장에도 얼굴 내밀며 공과를 자랑하는 모습은 빛나기 보다 오히려 더 처량해 보인다.
대우조선의 옥포지역 t사회공헌 약속 80억, 현대산업개발의 사회공헌 50억+알파, 삼성조선의 실내수영장 건설 약속, 아이파크 2차 개발이익 환수금 142억, 낮잠자고 있는 근포요트계류장 80억, 해금강 휴양시설지구 129억원 예산 사장 등을 합치면 500억원이 넘는 돈들이 무용지물로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제대로 보이질 않는데도 발뻗고 잘 수 있을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빵과 서커스'의 국가 자살 징후는 우라나라 온갖 분야에서 목격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의 부작용을 알면서 세종시를 만들고, 비용만 천문학적으로 드는 세월호 인양을 결정했다. 항가리 수장 여행객들도 세월호처럼 처리해야 당연할까? 무상급식· 무상보육이 서민층 몫을 더 줄이는 역설(逆說)을 보고도 여전히 무상 복지를 외친다.
집단 이익이 국가 이익보다 우선시되고 당장의 몫을 쟁취하려는 떼쓰기가 곳곳에서 난무하고 우리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일본의 우경화도, 중국의 팽창주의도 아니다. 병리(病理)를 알면서도 치유할 힘을 잃은 자기 해결 능력 상실이 더 문제다. 망조(亡兆)가 든 나라는 타살(他殺) 당하기 전에 스스로 쇠락 하는 법이다. 거제시의 남맥상을 지키라고 뽑은 의회는 어떤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행정사무감사 질문은 업무보고 질문인지 감사장인지 분간이 어렵다. 공부하지 않는 의원들은 시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왜 입을 닫고 있는가?
국가의 자살을 걱정한 40년 전 일본 지식인들의 경고가 무섭도록 절실하게 다가온다. 나라를 이렇게 몰고 가는 것은, 거제시를 뒷걸음치게 하는 것은 국민과 정치의 합작품이며, 거제시민과 거제시청인 것은 아닐까?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